불교 스님에게 탁발은 수행의 한 방편이었다. 하루 한끼를 먹되 잘살고 못살고를 가리지 않고 일곱집을 다녀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탁발은 당연히 수치와 굴욕이었다. 그러나 메일매일의 굴욕과 수치를 이겨내며 탁발 스님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오만과 아집을 깨뜨리려고 했다. 탁발은 적선하는 중생에겐 보시의 선업을 쌓게 해주는 일이었고 스님들에겐 살생의 악업을 막는 수단이기도 했다.
밭 갈고 논 매는 농사일에서 벌레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살생의 악업 대신 중생에게 미래를 위한 보시의 선업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에 탁발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계는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탁발의 본래 의미는 온데간데 없고 폐해만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일은 과연 선일까, 악일까. 적선을 베풂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이지만 순간의 적선이 거지를 영원히 거지에 머물게 하는 나쁜 일이라는게 사회의 지침이다. 그래서 한푼 달라는 거지를 만날 때면 누구나 갈등을 겪는다. 줄까, 말까. 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의 규칙과는 무관하게 동화나 전설은 적선의 행복과 어마어마한 보상을 이야기 해준다.
거지는 역사와 같이 한다. 로마 제국에서부터 오늘날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 미국에도 거지는 득실댄다. 부자와 공존하며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한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밥 좀 주이소'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구걸과 동냥을 바라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역이나 터미널에는 자선단체를 빙자한 거지까지 득실댄다.
우리나라 거지의 역사도 오래부터다.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백제 무왕도 거지였고 조선조 암행어사의 출두는 일단거지 행세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지를 소재로 한 소설은 물론 판소리나 춤 장단판의 단골 배역으로 등장한다. 신명나면 너도 나도 '얼씨구 절씨구' 각설이 타령을 불러댄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카르타 시내에서 악사나 거지 등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경우 6개월이하의 징역이나 5천달러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는 조례를 이번주부터 시행한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대도시의 질서를 잡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도시의 팽창과 함께 늘어난 가난한 사람의 현실을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도 있다.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일은 과연 善(선)일까 아닐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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