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고 물이 맑아 빼어난 산수 풍광을 자랑하는 경남 거창(巨昌). 경상 우도의 문향으로 곳곳에 문화유산이 즐비하고, 선비정신이 살아 숨쉬는 전통 문화의 고장이다. 특히 가야산, 덕유산, 지리산 3대 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다.
유달리 산이 많은 거창에서도 의상봉(義湘峰)은 산세가 빼어나기로 전국에서 유명하다. 가야산 서쪽 두리봉(1,133.4m)의 남쪽에 솟아 있는 의상봉은 가야산국립공원 남서단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별유산이라고도 부르는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우두산의 한 봉우리인 의상봉의 정상 부분은 가야산국립공원에 포함돼 있지 않다. 우두산 상봉을 포함, 의상봉의 동쪽 고갯마루까지는 국립공원에 들어가 있으나 의상봉은 거창군에서 지정한 자연발생유원지로 돼 있는 것. 하지만 크게 보면 의상봉도 가야산권에 포함되고, 산의 풍광과 역사적 자취도 풍부해 '相生의 땅 가야산' 취재팀은 의상봉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과거와 현세에서 참선한 곳이란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의상봉. 88고속국도를 타고 가조나들목에서 내리면 가조면 소재지에 닿는다. 면소재지에서 의상봉 산행기점인 고견사(古見寺) 주차장까지는 약 4km 거리. 왼쪽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고견천을 두고 5분 여를 달리자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산길은 세 가닥으로 나뉜다. 주차장 상단 왼쪽으로 보이는 등산로 안내판쪽 길을 따르면 장군봉(3.3km)을 거쳐 의상봉에 이르게 된다. 또 주차장 위 가겟집에서 고견사(1.5km)나 마장재(2km)를 거쳐 의상봉으로 오를 수도 있다. 고견사를 거쳐 의상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나무 그늘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5분 여를 올랐을까. 보기만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고견폭포다. 30m 높이에서 흰 물줄기가 그대로 소(沼)로 떨어져 내린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고견폭포는 여성스런 금강산 비봉폭포를 닮았다. 우람하다기보단 유려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가파른 계곡을 따라 내려가 밑에서 폭포를 올려다봤다. 산 중턱에서 보는 것과는 색다른 멋을 안겨준다. 마치 물줄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의 하얀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싶다.
고견폭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돌이 많은 등산로는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거나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계곡 한 가운데엔 누군가가 세운 돌탑들이 많이 눈에 띈다. 중심을 잘 잡아 주먹만한 돌부터 작은 공깃돌까지 여러 개 돌을 절묘하게 쌓아놓았다. 돌탑을 세운 이의 정성스런 마음이 느껴졌다.
1시간 여를 오른 끝에 고견사에 도착해 마른 목을 축였다.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677년)에 창건된 고찰. 절 앞마당엔 수령 700년의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높이 28m, 둘레 6m가 넘어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 고운 최치원이 심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은행나무 아래서 잠시 땀을 식힌 후 고견사 뒤로 보이는 의상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견사 법당 왼쪽 옆으로 난 계단길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거대한 암벽이 보인다. 암벽 아래 있는 제단에 초가 놓여 있는 것으로 미뤄 기도처임을 알 수 있다. 이 곳을 지난 뒤부터 산행코스는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어지러이 널린 바위들을 하나 하나 밟으며 급경사길을 오르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금세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고견사에서 700여m를 오르자 고갯마루가 나타난다. 의상봉에 오르려면 이 고개를 넘어 의상봉의 북사면을 타야 한다. 200여m를 더 가니 삼거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 길이 의상봉으로 가는 길이다.
의상봉(1,046m) 정상은 예전에는 바위틈을 따라 위태롭게 올랐으나 8, 9년전 튼튼한 철계단이 놓여 누구든 정상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철계단을 5분정도 오르자 드디어 의상봉 정상에 닿는다. 100m가 넘을 듯한 거대한 바위가 꽃봉오리 형상을 한 의상봉 정상부는 생각보단 평평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 풍경을 조망하기에 그만이다. 남으로는 가조면의 평온한 모습과 차량들이 질주하는 88고속국도가 눈에 들어온다. 동으로는 우두산 상봉과 더 멀리 남산제일봉이 손에 잡힐 것처럼 다가온다. 북과 동으로는 가야산의 유려한 능선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좋은 방법이지만 멀리 떨어져 산을 그윽히 음미하는 것도 그 진면목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의상봉을 제대로 보기 위해 의상봉 동쪽 우두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을 탔다. 어느 순간 의상봉을 돌아보기 위해 뒤로 돌아서니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꽃봉오리 모양을 한 거대한 바위, 그 바위 사이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나무와 풀들, 철계단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돼 빚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였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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