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원가절감 동기를 앗아가는 법 개정

기업이라는 형태의 조직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이다. 계획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그 사회의 재화와 용역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을 '기업소'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시장경제체제에서나 계획경제체제에서나 기업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이 재화와 용역을 사회에 제공하는 활동에는 투입된 재화의 가치보다 산출된 재화의 가치가 더 커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다. 100원어치의 원료를 가공한 결과 150원의 가치를 지니는 물건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120원에 판매함으로써 기업은 20원의 이윤을, 소비자는 30원의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50원의 가치가 창조되었다. 이 점에서 두 경제체제 사이의 차이가 난다. 계획경제체제에서는 정해진 물량을 생산해 내기만 할 뿐이다. 이윤 동기가 없으므로 200원의 원료를 투입하여 150원 가치의 물건을 만들어 내어도 이를 통제할 시장이 없다. 같은 일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일어난다면 손실 50원을 감당하지 못하여 반드시 해당 기업은 퇴출되고 말 것이다. 즉, 사회적 효율을 보장하는 체제가 시장경제체제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원가 절감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는다. 부가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원가를 절감하지 않으면 초과된 원가가 부가가치를 잠식하게 되고, 급기야 위와 같은 역전이 생기면 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표가 좋은 집을 새로 구입하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최신 보도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타당하다. 근검절약하는 기풍에서 멀어진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이 원가 절감 노력에 박차를 가할 리 없기 때문이다. 원가 절감을 통한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 그리고 이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 경제 활동의 근본 중의 근본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만들어진 재화나 용역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하는 것에도 원칙이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시장이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하여 가격을 정하고, 계획경제체제에서는 계획을 짜는 소수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정한다는 것이다.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은데도 높은 가격을 매기면 당연히 잘 안 팔린다.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물론 시장의 작동이 불충분하여 정부가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에 개입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세금을 조절하여 수요를 억제한다든가, 공급을 늘리도록 시장으로의 신규 진입을 용이하게 한다든가 하는 고차원의 정책을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격 자체를 건드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느슨한 듯 보이나 정교하게 움직이는 시장 메커니즘에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것과 같은 거친 행동이 될 것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개정을 위해 입법예고되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공급에 필요한 비용에 비하여 가격이 현저하게 높은 경우 불공정한 행위로 보아 제재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기업이 원가를 절감하는 동기, 즉 부가가치를 더 많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동기를 박탈하는 조항이라고 본다.

원가의 절감과 시장가격은 각각 다른 것이다. 시장가격은 원가를 따지지 않는다. 가격은 오로지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하여 정해질 뿐이다. 한편 비싸게 물건을 만들 건 싸게 만들 건 이는 생산자의 문제이다. 생산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이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다.

시장 가격과 원가 사이에는 태평양보다 너른 개념의 차이가 있다. 이를 오해하고 시장가격과 원가를 같이 묶어서 규제하려는 생각이 이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법령을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2006년 제조업 설비투자증가율은 1.6%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질 기준으로는 오히려 -1.7%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낡은 설비가 가동되고 있으므로 원가가 불필요하게 지출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매출액 100대 대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자금이 자본금의 7배가 넘고 청년 실업이 몇백만을 헤아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새로운 설비를 투입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이에 따라 가격 경쟁력도 가지면서 이윤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개정 예고된 공정거래법시행령이 앗아갈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장사 잘하게 해주는 것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김연신(한국선박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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