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고려대학교의 뚝심 좋게 생긴 총장이 막걸리 마시는 소탈한 대학의 이미지를 세련된 고급 와인의 이미지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대학개혁을 시도해서 세간의 주목을 끈 적이 있었다. 요즈음 와인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다. 경제상황이 어렵다지만 눈에 띄게 판매에서 높은 신장을 보여주는 상품은 수입 자동차와 와인밖에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까? 와인은 격식과 문화를 가진 술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본래 품위있는 문화에 동참해야 자기성취감을 얻게 되는 존재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을 여기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와인은 면밀한 제조과정, 수많은 종류, 다양한 맛과 향, 세련된 에티켓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취미의 세계를 형성했다. 이제 그것이 문화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판매시장을 확대시키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를 배출하고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술이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있는 인간 삶의 일부분이다. 문제는 이 삶을 어떻게 형식화하며 세련시키는가에 따라 문화의 격이 달라진다. 수입 와인 붐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한 가지 서글픈 일은 우리 전통술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술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 종류에 따라 모임에 따라, 마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와인이 좋다고 하지만 분위기로 보자면 여름철 시원한 생맥주도 겨울철 따끈한 사케도 좋고, 빈대떡에 막걸리도 삼겹살에 소주도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 못지않게 술이라면 즐겨 마시며 술 인심도 좋다.
술자리에는 관대한 마음이 있고 또 예절도 있다. 각 고을마다 집안마다 특색 있는 술이 있었고 이것이 그 고을과 집안의 전통이며 자랑거리였다. 분명히 우리의 고유한 음주문화가 있는 것이다. 술을 빚고 마시는 일은 일종의 문화다. 우리를 알리고 시장을 만들며 산업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문화다.
와인에 대한 취향이 고조되면서 최근에는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와인 문화에 대한 강좌가 개설되었다.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대학 측은 이러한 새로운 강좌가 품격있는 교양인을 양성한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강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철학이나 미학 강좌는 선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와인 문화가 전통술을 잠식시키고 심지어 교양과목의 틀마저 위협한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민주식(영남대 조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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