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잘못된 만남

여느 시장에서 봄직한 풍경 하나. 어느 젊은 여자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생선 장수에게 물었다, 껌까지 짝짝 씹어가면서 말이다. "아저씨, 요놈은 얼마고, 조놈은 얼마예요?" 늙수그레한 생선 가게 주인이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아, 예! 이년은 오천 원이고, 저년은 만 원이지요. 어느 년으로 잡아 드릴까요?" 물론 그 생선이 혹 암컷이었는지, 또 그 숙녀분이 결국 어느 생선을 골라서 사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나 역시, 예전 수련의 1년차 시절에 그 생선 장수 아저씨만큼 순간 멍해졌다가, 내 생애에서 가장 퉁명스러운 의사 아저씨가 된 적이 있었다. 어느 진료과를 막론하고 수련의 1년차의 생활은 고달프다. 특히 한바탕 야간 전투라도 치르듯이 응급실 당직을 마치고 맞이하는 새벽 시간엔 더더욱 몸은 지치고 마음만 바빠 온다. 간밤을 무사히 버텨냈다는 안도감과 다시 빡빡한 아침 회진을 준비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묘하게 교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8월쯤이라고 기억이 되는 한여름의 새벽녘이었다. 호출을 받고서 응급실에 들어서니, 진찰대는 텅 비어 있고 알록달록한 남방셔츠를 입은 사내만 간호사 대기실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휴가용 세트처럼, 진한 선글라스에다 시원한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말이다.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아이가 아파서 왔단다. 딴에는 그렇다, 응급실에서 달리 소아과 의사를 호출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당최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둘러보니, 저쯤에서 똑같은 차림새의 아이가 온 사방을 휘저으면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다. 그제야 "너 아프다고 하지 않았니?"라는 아빠의 다그침과 "내가 언제 그랬느냐!"라는 아이의 오리발과의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갈 길이 바쁘니까, 대충 알아서 감기약 3일분치만 지어 달라."라는 아빠의 시큰둥한 주문일랑 무시하고서, 겨우 사로잡은 아이를 붙잡고서 진찰을 했다. 진료비 속에 분명 포함되어 있을 '진찰료'에 대한 서비스를 치러야 할 법적인 책임감과 수련의로서 진료 차트를 꼼꼼하게 챙겨야 할 의학적인 의무감으로만 말이다. 그리고는 내 생애에서 가장 성의 없는 처방전과 무뚝뚝한 목소리로 주의사항만 앵무새처럼 남겨두고는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작 부아가 났던 대목은 그 사내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도, 하찮은 감기 따위로 응급 호출을 당했다는 짜증스러움만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지레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찮은 걸로 여겨서, 상대방이 주려고 하는 호의나 배려조차 똑같이 하찮은 걸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빈말로나마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먼저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걸. "아이고, 사람이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지요, 뭘!"이라는, 언제라도 준비된 말을 상대방이 끄집어낼 기회조차 원천봉쇄해 버린 그 무신경함이 못내 서운했던 것이다.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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