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K씨는 요즘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자주 보여 불안하다며 진료실을 찾아왔다. 하얀 옷을 입고 자상한 얼굴로 나타난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가버리시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꿈을 깬 뒤에도 자꾸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를 때리고 온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는 폭력적인 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동생과 불안에 떨며 새우잠을 자곤 했는데, 이제 와서 그 망나니 같은 아버지가 왜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어디에 가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실컷 울고 싶다는 것이다.
'마이 파더'의 주인공 파커(다니얼 헤니)는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본명 공은철인 주한 미군이다. 파커는 좋은 양부모 아래서 교육도 잘 받고, 사회에 잘 적응하는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쪽은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그늘져 있었다.
수소문 끝에 파커는 친부임을 자처하는 황남철(김영철)을 만나지만, 그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중죄인이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끔찍한 범죄자이자 남루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였지만 파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이 파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미국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정체성에 대한 회의로 배회하던 입양아의 가슴에 사무친 한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입양아 애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해외입양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애런 베이츠는 유난히 생부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존재는 아들의 남성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들이 아들답게 자라나서 남자로서의 성역할을 하는 것은 대개 6세 전에 이루어진다. 6세 전에 아버지를 여의거나 헤어진 아이는 부끄럼이 많거나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고 여성적인 성향을 더 많이 보인다. 파커는 친부와 이미 애착이 형성된 뒤에 입양을 간 셈이다. 그의 오랜 기억 속에는 고스란히 회상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리라. 애착이란 부모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살았나 하는 것보다, 어느 시기에 함께 했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이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