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때 아닌 '가을장마'와 '태풍'으로 날씨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삐딱하게 논에 꽂힌 허수아비도 구경하지도 못하고 누이의 루즈보다 더 빨간 사과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말이 한가위지, 흐린 날씨와 우요일(雨曜日) 이 많았던 탓에 농민들의 시름으로 한가위 기분이 나질 않는다. 다만 어렸을 적에 찐쌀 씹으며 한가위를 기다렸던 기억만이 한가위를 느끼게 할 뿐이다. 오도독 씹어 먹던 찐쌀처럼 궂은 한가위를 씹어보자.
정태 녀석이 찐쌀을 한 주머니 가득 담아 골목길로 달려왔다. 고개를 뒤로 젖혀서 찐쌀을 입에다 쏟아 붓는다. 구경하던 꼬마들도 정태를 따라 덩달아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힌다. 꼭 지네들이 찐쌀을 먹는 것처럼 어설픈 시늉들이다.
"쪼매만 도…." "히야…. 나도…." "정태야…. 구슬하고 바꾸자." 찐쌀 좀 얻어먹으려고 성격대로 구걸을 한다. 각설이 타령만 안 나왔지 손 바가지를 하고서는 정태에게 매달렸다.
구걸하는 녀석들이 귀찮다는 걸 정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찐쌀로 으스대고 싶었다. 한번은 정태가 찐쌀을 한 줌 쥐고 고개를 젖혀 제 입으로 부을 때 갑자기 손을 쳐버렸다. 쥐고 있던 찐쌀이 삐끗 엇갈려 숨구멍으로 잘 못 넘어가 한동안 켁켁거리며 고생하는 걸 보며 얼마나 웃었던지…. 찐쌀 얻어먹는 것보다 더 고소했다.
한창 바쁜 농사철에 엄마가 설익은 나락을 베다 홀태에 훑어서 커다란 가마솥에 찌고 덕석에 말려서 절구로 빻아 키로 껍질을 이루어 만든 찐쌀…. 특히 찰벼로 만든 찐쌀은 쫄깃쫄깃하고 구수한 맛이 정말 좋았다. 추석이 다가오면 이 찐쌀로 동네 골목을 쏘다니며 입을 심심찮게 했던 주전부리였다.
3~40년 전만 해도 쌀이 부족했다. 통일벼니, 안남미니, 뭐 또 정부미니 해서 여러 가지 개량종이 나오기 전, 찐쌀은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일종의 저장 방식이었다. 찐쌀을 만들어 놓으면 곰팡이나 벌레의 피해가 적고 쌀의 변질도 덜 했다.
그래서 찐쌀은 벼 껍질이 잘 벗겨져 현미를 만들기도 쉽고 도정 과정에서 잘 부러지지 않아 손실률도 적었다. 또한 비타민 B군이 많아 영양으로도 우수하고 무엇보다 쌀 모양이 제대로 여서 밥을 해놓으면 정말 이상적인 완벽한 밥이 되기도 했다.
그 맛에 길들여져, 몇 년 전 시장을 찾아 찐쌀을 사서 밥을 해 먹었다. 근데 찐쌀 모양이 길쭉 동글하지가 않고 끝이 잘려 보이고 쌀에 금이 간 듯 보였다. 게다가 해놓은 밥이 그 옛날처럼 쌀알 모양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찐쌀인데 싶어 밥을 맛나게 먹은 것 까지는 좋았다. 훗날,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중국산 찐쌀을 보기 전까지는 맛나던 밥이었다.
충격적인 중국 찐쌀의 내막은 3년 전에 수확한 쌀을 찌고 말려서 만든 것으로 중국 농민들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세균 덩어리가 버스손잡이, 변기, 엘리베이터의 버튼에서 검출된 세균보다 더 많은 세균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한술 더 떠서 찐쌀을 햅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표백제를 사용하였다는 제보가 잇따랐고 중국 찐쌀은 치매, 기억력 감퇴, 골 연화 현상에 치명적인 알루미늄 함량이 기준치 이상 나왔다는 거였다.
아….그때 배부르게 먹었던 찐쌀 탓인지 몰라도 기억력이 거의 치매 수준에 다다른 게 중국 찐쌀 때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두 번 다시 시장에서 정체불명의 찐쌀을 사먹지 않으리란 다짐을 했건만….
중국 찐쌀 안 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중국 찐쌀이 국산 쌀값의 30~60% 수준으로 싸서 병원, 급식업체, 김밥공장, 도시락업체, 일반음식점 등에서 참 우라지게 사용하고 있단다. 중국 찐쌀은 눈으로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외식을 좋아하는 나는 아마 중국 찐쌀을 몇 가마니나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믿고 살아야지…. 중국산 찐쌀을 안 먹었다고 우기면서 살아야 할 테지….
닥치는 대로 먹던 수준의 먹을거리를 이젠 골라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일이 생존 문제로 다가섰다. 그 문제의 해결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지역의 농촌에서 제대로 된 농산물을 구입하면 마구잡이식 먹을거리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다.
이제 농촌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추억도 건네주고 여러 가지 체험도 가능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문경 마성면 하내리 속칭 "나실마을"은 인근의 문경 석탄박물관, 레일 바이크, 왕건 세트장과 함께 명소를 끼고 많은 도시민들의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도시를 닮지 않고 농촌의 순수성을 지킨다면 많은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그리워하며 나실마을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실마을에서 순 우리 국산 찐쌀도 당연히 맛 볼 수 있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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