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액자 속의 초록터치

흑과 백 양극의 색깔이 화폭을 가득 채운 비구상의 액자가 내 방에 걸려있다. 나는 긴 세월 액자 속에 있는 초록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오늘 문득 그 액자 속에 초록과 아주 가벼운 터치의 붉은 색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초록은 흰색의 물감을 가로질러 제법 길고 선연했고, 작은 종기나 꽃잎처럼 붉은 색이 거기 액자 속에 십여 년을 갇혀 있었던 것이다. 흑색이나 백색에 비해서 그들이 가진 공간은 아주 좁았고 화폭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십여 년 동안 그들은 분명히 거기 존재했었고, 액자 속의 세계를 완성시켰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존재를 인식시키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고요했고, 깊었을 것이다. 아니 내 침침한 눈이 문제였거나 감성의 유연성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이 미약한 두 개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난 후 액자 속의 그림은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은 미묘한 이미지들로 꽉 차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액자 속은 여백으로 가득했고 설렘으로 출렁거렸다. 어쩌면 지금껏 내가 봤던 그림은 허상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완성시키는 저 가벼운 터치의 놀라운 설렘. 작은 것들의 경이로운 힘으로 풀꽃과 바람은 우리 곁에 오고 운명 같은 사랑도 그렇게 오고 간다.

그 후로 가끔씩 액자와 나는 팽팽하게 대립하거나 혼융의 상태로 포개진다. 대립과 혼융의 상태를 오가며 내 마음속 단애(斷崖)에는 작은 꽃망울이 맺히거나 말라죽은 가문비나무의 뿌리가 삐죽 몸 안으로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결국, 인기척도 없는 액자 속이나 일상의 뒤쪽에 가려진 미세한 것들에게 손을 내밀 때 모든 수사(修辭)는 빛나고 언어는 진정성을 획득한다. 세계를 직관과 미세한 낌새로 읽어내지 못할 때 시인은 죽고 시는 확장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파트 마당에 세워둔 자동차 위에 배롱나무 꽃잎이 제법 수북하게 쌓여 있다. 분홍색 꽃잎과 초록 받침이 간밤에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 있다. 우주에서 보낸 이 찬란한 엽서. 숨이 멎을 듯 환한 짧은 순간이 지나가고 나는 내 자동차 위로 날아든 낙화들의 축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고 출근길에 오른다.

제법 노란 물이 든 은행나무며 서늘한 기운의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9월의 하루가 그렇게 반짝이며 지나간다. 우리의 삶이 조금만 더 깊어진다면, 액자 속 초록의 터치 같은 미세한 울림이 문득,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겠다. 하루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보면 어떨까.

송종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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