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미당문학상 수상 문인수 시인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식당의자' 전문)

수성못가 식당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의자다.

비 오는 날 그 의자가 쉬고 있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며 한때 누군가의 엉덩이를 지탱했던 충복이다. 오만 얘기를 다 들었지만 구시렁거리지 않으며, 오만 구박을 받았지만 꼬리치지 않고 천막을 지키던 그 흰 플라스틱 의자가 실로 모처럼만에 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인의 눈은 다르다. 널리고 널린 그 의자에 삶을 비춘다. 제7회 미당문학상을 받은 시인 문인수(62)의 시 '식당의자'는 하찮은 의자의 무심한 표상에서 남의 쉼을 위해 온갖 짐을 다 진 거룩한 휴식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주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만난 그는 "이만하면 됐다 싶다. 이래서 시를 썼구나 싶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하고, 귀를 의심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가 소주를 2잔이나 마시는 걸 보니 기쁨이 각별해 보였다.

미당문학상은 시 관련 문학상으로는 권위 있는 상이다. 그는 '온갖 악조건에서도 단시간에 만장일치로 선정된 것'에 특히 의미를 두는 듯했다. '악조건'이란 늦깎이 데뷔에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란 것이다. 그는 마흔에 등단했다. 대구고 재학시절부터 시를 썼지만 이후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학력도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중퇴다. 지방 출신으로 미당문학상 수상은 처음이다.

방황과 고통의 20대와 30대를 보냈다. 그의 말대로 자포자기, 자기멸시에 빠져 보낸 세월, "망연자실한 생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시를 썼다. 마흔인 1985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놀라운 시작(詩作)을 보였다. 상복도 터져 2000년 제11회 김달진 문학상을 시작으로 2003년 노작문학상, 2006년 시와 시학상, 2006년 금복문화상, 2007년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 문학상을 잇따라 받았다.

그의 시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퍼덕거리는 생명력도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아마 20대에 데뷔했으면 작업에만 천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늦은 만큼 열심히 쓰자는 생각으로 늘 자신을 다졌다. 시를 쓸 때만 자신이 "꽤 그럴 듯해 보였다."고 했다. 젊은 날의 방황이 지금을 위해 긴밀히 연락하고 짠 것 같다.

시인은 '식당의자'에서도 보듯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관찰이 참 남다르다. '식당의자'도 말만 의자지 고생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이야기다. 이번 미당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공백이 뚜렷하다'도 달력을 뗀 자리를 통해 무상한 삶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생활 주변에 널린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그는 뒤늦게 등단해 "글로 밥 벌어먹을 정도 된 것"에 대해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시인은 지금도 내년 초에 나올 일곱 번째 시집 준비에 한창이다. 시집 제목을 미당문학상 수상에 맞춰 '식당 의자'로 정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는 그의 수상 소감이 "이제 다시 시작이다."는 또 다른 말로 들렸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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