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박정헌 지음/ 열림원 펴냄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 앞에 번민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던가? 더구나 타인의 무게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끈을 놓는 비루한 유혹은 얼마나 가볍고 비일비재한 것이던가?
'끈'은 죽음의 지대에서 살아나온 산사나이들의 처절하다 못해 잔인한, 기록이다. 하지만 신이 내린 가혹한 운명을 거부하고 끝까지 사람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은 아름다운 기록이기도 하다.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6,440m) 북벽을 오른 두 산사나이가 하산 도중 크레바스(빙하 계곡)에 빠져 조난을 당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 서로를 잇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자일(끈) 뿐이다. 절벽 아래에 매달린 사내, 최강식은 다리가 부러지고 위에 있던 사내, 박정헌은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고 말았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끈을 쥐고 있던 박정헌은 그 끈을 끊어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비극적 유혹과 후배인 최강식을 살려야 한다는 인간적 번민 속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박정헌은 그 잔인한 유혹을 이겨내고 인간의 길을 선택한다. 결국 구일간의 사투 끝에 그들은 생환했지만 박정헌은 동상으로 양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과 발가락 두개를 잘랐고, 최강식 역시 아홉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끈'을 읽으며 오래전 밤을 꼬박 새워 읽었던 영국인 등반가, 조 심슨이 쓴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라는 책을 떠올린다.
1985년 5월 페루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6,400m) 서벽을 초등한 두 산사나이의 조난 역시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지옥을 기록한 책이다. 오른 쪽 다리가 완전히 부러진 채 45m 아래 절벽 아래로 떨어진 조 심슨을 구하기 위해 동료 사이먼 역시 악전고투를 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결국 사이먼은 자일을 칼로 끊고 홀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고 만다. 하지만 신의 시나리오는 너무나 가혹했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조는 삼일 밤낮을 기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사이먼과 박정헌의 판단의 옳고 그름이 문제였다면 이 책들은 결코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이먼이 베이스캠프로 홀로 돌아와 자신이 조를 죽였노라고 고백한 것이나 박정헌 역시 자신만을 위해 자일을 끊고 싶었다고 고백한 사실은 인간의 이기심과 몰염치를 외면하는 세상을 향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기록들은 아름답다.
'끈'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고 있다. 자기 합리화와 불신을 이겨내고 인간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박정헌과 최강식, 조 심슨과 예이츠 같은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인간에 대한 뜨겁고 선한 애정을 믿어야 한다면 지나침일까?
전태흥(여행작가·(주)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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