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 모랫말 아이들

머리카락이 희끗한 노년층에겐 아른하게 어릴 적 추억을 속삭이는 책이 있다. 한창 혈기왕성한 청소년에겐 춥고 배고팠던, 하지만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한 1950년대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비춰주는 책이 있다.

황석영 작가의 동화 '모랫말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설레임으로 다가가는 어린 시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은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피어났기에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슴 깊숙이 애잔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미군에게 몸을 팔면서 살아가는 여인, 길거리에 넘쳐나는 각설이, 이데올로기의 잔인함에 미쳐버린 여인, 곳곳에 널린 시체…. 그렇지만 작가는 그런 슬프고 힘들었던 시절을 한탄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시절로, 정이 넘치는 시절로 회상하고 있다. 모랫말 아이들의 무대는 '모래마을'. 아마도 작가의 고향마을인 듯 싶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둑이 있으며 둑 아래에는 모래와 숲이 우거진 그런 곳이다.

10편의 단편으로 엮은 이 책의 첫 이야기는 '꼼배다리'에 얽힌 사연이다. 각설이인 꼼배는 어느날 함경도에서 피난 온 뚱뚱한 과부와 혼인하게 된다. 이들은 장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경군들이 떨어뜨리는 동전을 거둬드린다. 또 동네 아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그 집아이 이름을 불러대며 밥을 구걸한다. 그러던 중 동네 아이들이 들쥐를 잡기 위해 쥐불놀이를 하느라 갈대밭을 태웠고 움막에서 큰불을 발견한 거지 아내는 공포에 휩싸여 온몸으로 불을 끄기 위해 불 붙은 갈대 위를 뒹굴어댄다. 그 바람에 거지 아내는 심한 화상으로 인해 숨구멍이 막혀 목숨을 잃게 된다. 그녀에게는 화재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아픈 기억이 있었기에 불을 보자 지나치게 반응했던 것이다.

갓난아기와 아내를 잃어버린 꼼배는 동네사람들을 향해 "야, 이놈들아, 느이만 사람이냐, 느이만 사람이야"라며 절규한다. 꼼배 다리는 꼼배가 마을을 떠나기 전 혼자 힘으로 만들어 놓은, 마을사람에 대한 밥값이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슬픈 여운을 준다. 어느날 한국전쟁 중에 화염방사기로 인해 심한 화상을 입어 얼굴이 괴물처럼 변한, 상이용사가 애인을 찾아 마을에 불쑥 나타난다. 모랫말 아이들은 국원이 큰 누나인 그녀가 결혼했음을 말해주지만, 상이용사는 아마 너희가 작은 누나랑 착각했을 거라며 믿지 않는다. 상이용사는 애인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큰 누나와 마주친다. 먼저 알아차린 상이용사는 애써 흉칙한 얼굴을 돌려버린다. 국원이 큰 누나는 치마를 나풀거리며 남편에게 가는 길이다. 멀어져 가는 도중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돌려 상이용사를 보는 듯 하더니 이내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상이용사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슬픈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독자의 가슴을 메이게 하지만 그 표현은 잔잔하기만 하다. 책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삽화도 독자에게 솔솔한 재미를 준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1. 눈이 파란 여자아이인 '귀남이'가 주인공 '수남이'와 헤어질 때 금단추를 준 까닭은 무엇일까.

2. 곡마단에 일하는 남매 중 남동생이 누나가 다리를 다쳤는데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3. 아이들은 말이 어눌해 '고문관'이라고 놀리던 상이용사에게 어느날 경례를 하며 존경의 뜻을 표한다. 사연이 뭘까 찾아보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