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다. 그런데, 사람은 살기 위해서만 먹지는 않는다. 먹기 위해서 살기도 한다. 식욕은 사람이 지닌 근본적인 욕망 중의 하나이다. 이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사람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먹는 일은 사람이 살아가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러나 다이어트 산업이 날로 번창하는 걸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먹는 일이 괴로움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마른 체격인 나는 다이어트에 신경 쓸 일이 없기에 먹는 일을 마음껏 즐긴다. 객지나 외국에 가면 꼭 그곳의 이름난 식당을 찾아 별미를 즐기곤 한다. 때로는 음식 값이 제법 비쌀 때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이렇게 먹는 일의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기 위해 내 나름대로 정한 규칙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적게 먹는다. 굳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배가 부르면 음식 맛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배가 부르도록 먹지 않는다.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적게 먹는 것은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아직도 굶주리고 있는 8억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적게 먹으면 될 일을 가지고, 쓸데없이 많이 먹고서는 살 뺀다고 땀 흘리며 고생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둘째, 천천히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조급해서 그런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음식이 곧바로 나와야 직성이 풀리고, 밥 먹는 속도 또한 대단히 빠르다. 이렇게 빨리 먹어서는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고 즐길 수 없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비로소 음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나그네에게 물을 떠주면서 버들잎 몇 개를 일부러 떨어뜨려 천천히 마시도록 한 지혜로운 아가씨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셋째, 육류보다는 야채를 주로 먹는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냥 고기보다는 채소가 내 입맛에 더 맞으니까 즐겨 먹는 것이다. 가끔 회식 자리에서는 본전 생각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죄 없는 동물을 가두어 기르고 죽이는 일이 과연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자문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잡식성 동물이 빠지게 되는 딜레마이다.
요즘처럼 꽃이 지는 계절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비빔밥을 먹고 싶다. 김이 설설 나는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향긋한 봄나물과 매콤한 고추장을 얹고 쓱쓱 비벼서 맑은 콩나물 국물과 함께 먹고 싶다. 그 밥그릇 안에 꽃잎 두세 장 떨어져 내리면 더욱 맛있으리라.
시인·영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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