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올해로 29년이 됐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박정희란 인물은 아직도 대한민국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박 대통령은 아직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다. 역대 대통령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인물도 바로 박 대통령이다. 지금의 정치'경제 상황이 박 대통령에 대한 신드롬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다. 조금 더 비약하면 박정희란 인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에서 그는 훌륭한 자산이면서,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흔적을 찾아가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가 이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데 이어 이번 '4·9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및 친박무소속연대 등 이른바 보수로 분류되는 당선자들이 200명을 넘어 '보수천하(保守天下)'가 되자 정치권 안팎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말이다. 김대중-노무현으로 대표되던 지난 10년 동안의 진보의 시대가 저물고 보수, 더 나아가 성장을 기치로 내건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것이다.
'진보에서 보수로의 대전환'을 이끌어 낸 17대 대통령 선거 및 18대 총선 결과를 찬찬히 뜯어보면 '박정희 신드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물론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 등 그녀를 따르는 60여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해 가장 큰 승리자란 평가를 받은 박근혜 전 대표. 물론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이 승리를 거두는 데 가장 큰 토대가 됐지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드롬과 향수, 그리고 박정희 후광이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 막판에 한나라당이 박 전 대표의 여동생인 근령씨를 긴급 투입, 박정희 신드롬 표잡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경제를 표방하고 경제살리기를 외치며,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적지 않은 득을 봤다는 분석도 많다.
그 적절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박정희-이명박-박근혜 세 사람에 대한 한 진보진영 학자의 표현은 한번쯤 곱씹어볼만하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박정희의 두 얼굴일 수 있다. 극우 반공주의적 박정희가 박근혜라면, 강력한 개발주의적 박정희는 이명박인 것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쫓았다'는 삼국지처럼 보수로 회귀한 한국 정치지형의 큰 변화엔 29년 전 세상을 떠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분명히 일조한 측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아직 살아 있다"라는 화두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기 시작했던 출판계의 박정희 신드롬도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대형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 '살아 움직이는 박정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국내외에서 출간된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책이 600여권에 이를 정도다. 지난 해 출간된 '박정희 다시 태어나다'란 책의 표지는 "육영수 여사가 평소 좋아했던 목련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는 설명과 함께 '포스트 박정희 신드롬의 도래'를 강조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그 옆에는 '박근혜 신드롬' '카리스마 박근혜'라는 제목의 책들도 보여 부녀지간에 정치적 자산을 대물림하는 느낌을 줘 흥미롭다.
국민들로부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도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 얼마전 전반적인 국가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을 묻는 질문에 10명 중 8명(79.8%)이 박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다른 대통령들은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티저 홈페이지를 운영할 때 했던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세종대왕과 가장 닮은 대통령이 누구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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