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58년만에 보은 위해 상주 찾은 윤혼 옹(翁)

"6.25때 밥한끼 은혜 이제 갚구려"

▲ 윤혼(왼쪽)옹이 은인의 아들 김정배(중간 흰수염)씨와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혼(왼쪽)옹이 은인의 아들 김정배(중간 흰수염)씨와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 생명의 은인을 보는 것 같아…. '밥 한 상'의 보은을 60년이 다 되어서야 할 수 있게 됐구먼!"

서울 구로구에 사는 윤혼(78)옹이 지난 주말 상주를 찾은 것은 낯선 길손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재워준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해서다. 윤옹이 말하는 '밥 한 상'의 사연은 58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나던 해 겨울로 거슬러간다.

당시 스무살 청년이었던 윤옹은 국민방위군 입대를 위해 인솔장교를 따라 후방(진주)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쟁통에 먹지도 자지도 못한채 기진맥진 남쪽으로 향하던 중 경상도를 지나가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서울 방직공장(현 애경유지)에서 인연을 맺었던 김철수(당시 25세) 선배가 고향으로 내려가며 남긴 말 한마디가 떠올랐던 것이다. "언제라도 상주 부근을 지나거든 꼭 한 번 찾아 와…."

때마침 상주에 온 그는 소대장에게 하루 허가를 받아 선배의 집을 찾았다. 그 선배는 집에 없고 형인 김희수(작고·당시 32세)씨가 낯선 서울 손님을 맞아주었다. "평생을 살면서도 그때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나를 그토록 반갑게 잡아주던 그 따스한 손길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 윤옹은 지난날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당시 김씨는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지식인답게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씨는 부랴부랴 밥을 지어 큰 그릇에 가득 담아내 주었다. 두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고 난 서울 청년은 피로와 식곤증으로 따뜻한 온돌방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집을 나서는 청년에게 김씨의 아내(김동순씨)는 김으로 싼 커다란 주먹밥 두 개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건네주었다. 진주로 가는 동안 그 주먹밥을 먹으면서 마치 친동생처럼 돌봐준 따스한 온정에 몇번이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수많은 전투를 거쳐 제대를 했다. 서울로 돌아간 그는 전쟁때의 고난을 되새기며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다. 여든이 다 된 지금도 도심 한복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도 '상주의 밥 한 상"이 늘 가슴 한 쪽에 '빚'으로 남아 있었다.

마침 딸 주심씨가 최근 상주 공검지에 연꽃촬영을 간다고 하기에 꼬깃꼬깃 접은 종이 쪽지를 내밀었다. 상주에 온 딸 주심씨는 '상주시 외답면 주막거리 앞 동네 금광. 형 와세다대 김희수. 동생 김철수' 등등의 글자가 적힌 쪽지를 연꽃단지에서 만난 김인호 명실상주 단장에게 내밀었다.

김 단장은 상주의 마당발로 소문난 개인택시 기사 김상준(59)씨에게 수소문을 부탁했고 닷새만에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윤옹은 지난 주말 부랴부랴 상주로 내려왔다. 그러나 사연의 주인공인 김희수씨는 타계하고 아들 정배(60·상주시 서문동)씨가 윤옹과 그의 아들 주이(50·한국농어민신문 대표이사)씨를 맞았다.

윤옹은 은인의 아들 김정배씨의 손을 잡고 놓을 줄 몰랐다. 빛바랜 사진을 보며 옛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연방 눈시울을 붉혔다. 선배인 김철수씨는 몸이 불편해 요양중이라고 했다. 58년만에 은혜의 고장 상주를 찾은 윤옹은 "가슴에 남아있던 빚을 이제야 갚는 듯하다"며 "앞으로도 두 집안이 한가족처럼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자"고 약속했다.

상주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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