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제를 살리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여러 분야에 시장경쟁원리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해당 분야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이를 놓고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장논리는 경쟁과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소외와 양극화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의료나 교육,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적절한 시장개입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로 인한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민영건강보험, 영리병원이 그랬다. 그리고 얼마 전엔 국민의 질병정보 제공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내용은 이렇다. 민영건강보험을 관리하는 금융위원회가 국민의 질병정보를 금융위에 제공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발표, 반발을 사고 있다.
금융위는 민영보험 사기 예방과 보험산업 활성화를 위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개별 질병정보 열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간 수천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보험사기는 보험사의 경영 상태 악화는 물론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가입자) 부담을 늘리게 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보험사기 의심자에 대한 의료정보가 사생활보호를 이유로 제대로 제공되지 못해 금융감독 당국은 사기행위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금융위는 보험사기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경우에 한해 보건당국을 통해 선별적으로 의료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위는 현재 개인 의료정보가 아닌 계약정보 등에 대해서도 업무 담당자는 다단계의 보안절차를 거쳐야 접근이 될 정도로 관리를 강화하고 있고, 다른 용도에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개인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넘겨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존 법(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으로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경우 질병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 법 개정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보험 사기로 의심만 돼도 국민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은 결국 민영보험이 건보 가입자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 정보 열람 과정에서 국민의 사생활 침해와 정보 유출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보험업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끊임없이 건보 가입자의 질병정보 공유를 요구해 왔다. 민영보험산업 발전과 보험통계표 마련을 위해선 개인 질병정보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선 개인 질병 정보가 더없이 요긴하다.
국민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은 존재 이유가 다르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가입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민영보험은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보험요율을 결정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선택적이고 차별적인 민영보험이 계약자 심사 목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얼마 전 제주도가 영리병원 도입을 위해 주민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반대 여론이 많았다는 점은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 사례이다. 의료를 '돈벌이' 대상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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