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시민예술가 시대

"아마추어라고요? 열정만은 프로입니다"

영국 템스강은 걷는 재미가 있다. 수려한 풍광 때문 만은 아니다. 심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거리예술가, 시민예술가들이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 하루종일 템스강변에 머물며 모래를 조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유명하다. 템스강 어디에서나 모래조각가들에게 동전을 던지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템스강변을 거닐면 또 클래식 선율을 들려주는 첼로 연주가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마술가, 자전거 곡예를 펼치는 청소년들에게 눈을 뗄 수 없다.

2005년 9월, 서울 청계천엔 이른바 '청계천 아티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출연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오디션을 거쳐 선발한 거리예술가이다. 음악·무용·묘기·마임·페인팅 같은 다양한 분야의 거리예술가들이 청계천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대학로, 홍대 앞 같은 서울 다른 명소에서도 거리예술 문화 프로그램 개발이 계획되고 있다.

거리예술, 시민예술이 뜬다. 도시디자인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거리예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 마침 2008년, 대구 신천에서도 시민예술가 시대가 열린다. 컬러풀대구페스티벌2008(CDF2008)이 바로 그 주인공. 4회째를 맞아 10월 1~7일 펼쳐지는 CDF2008이 '신천에서 예술과 놀자', '시민예술가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대구시민 예술가

"부사·홍옥·산사·인도·화랑·서광·국광…." 사과 품종이기도 하지만 대구 직장인 밴드의 개별 팀 이름이기도 하다. 4년전 대구 직장인들이 만든 애플밴드는 150여명까지 회원이 늘어나면서 사과 품종을 따 다시 9개 팀으로 나눠 개별 또는 연합공연을 펼치고 있다. 팀마다 드럼·베이스기타·일렉기타·키보드 연주자가 기본적으로 있고, 아무리 바빠도 1년에 두번씩은 꼭 정기공연을 열며 양로원 같은 시설에서 음악봉사 연주를 하기도 한다. 인도팀에서 드럼을 맡는 김현주(37·여)씨는 "그저 음악이 좋아 모인 순수 아마추어들"이라며 "음악을 좋아하기만 하면 실력에 상관없이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디트로는 대구지하철공사 직원들이 만든 색소폰 동호회. 3년 전 모임을 결성한 뒤 대구 지하철2호선 반월당역, 담티역 대합실에서 순회공연을 열어 왔고, 지하철공사와 자매 결연을 맺은 달성 현풍면 한정리 마을에서 무료 봉사 연주를 하고 있다. 김재호 회장(40·월배차량기지 전기기계사업소)은 "디트로 역시 실력에 의미를 두지 않는 순수 아마추어 모임"이라며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색소폰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유럽이나 서울처럼 대구 시민예술가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예술가란 표현은 어쩌면 어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신나게 놀고, 느끼고, 표현할 뿐 굳이 예술이라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공연 장소 또한 마찬가지다. 마음 내키는대로 찾아가면 그뿐, 번듯한 공연장을 구해야만 공연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지하철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갈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대구스타디움(월드컵경기장) 야외 소무대가 가장 뜨고 있다. 이곳에선 매년 5~9월 매주 토·일요일마다 어김없이 공연이 펼쳐지고, 고전무용·색소폰·동요·클래식·밸리댄스·재즈댄스·국악·통기타 등 각양각색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시민예술의 장-CDF2008

CDF2008에선 신천이 시민예술가들의 주무대가 된다. CDF 2008에서 시민예술가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큰 테마는 신천 시민프린지 페스티벌. 10월 1~7일 축제기간 내내 신천에 마련한 특별무대에서 펼쳐지는시민프린지 페스티벌은 수화댄스, 여성합창, 무언극(동물원 사진사 이씨), 실버아코디언, 대구풍물굿, 밸리댄스갈라쇼, 건강장수춤, 패션쇼(색깔있는아줌마), 열린보컬밴드, 인형극(아낌없이 주는 나무), 무용(춤의 노래, 꽃의 노래), 시와 노래로 하늘을 열다, 토즈댄스, 응원퍼포먼스, 택견, 태권무, 디트로색소폰 금빛향연, 영어뮤지컬(오즈의 마법사), 세계문화댄스, 다운비트재즈연주, 마임퍼포먼스, 재즈발레, 난타 등 모두 68개의 다양한 공연들로 이뤄져 있다.

이 같은 '신천 시민프린지 페스티벌'의 핵심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70여개 팀들 모두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자 시민이라는 것이다. 3차례에 걸친 공모를 거쳐 선정된 팀들로 애플밴드나 디트로처럼 직장인 또는 대학·인터넷 동호회가 중심을 이룬다. 신혜진 CDF 홍보팀장은 "영리 목적을 배제하고 순수성만을 따져 공연팀들을 선정했다"며 "말 그대로 시민예술가들"이라고 했다.

※프린지페스티벌이란?

프린지 또한 시민예술이나 아마추어, 독립 예술을 상징하는 또 다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프린지페스티벌'의 출발점은 1947년 영국 에딘버러 국제예술제. 2차 세계 대전 직후 황폐해진 민심을 달래고자 기획된 이 예술제에 참가하기 위해 8개의 패기만만한 아마추어 공연 단체가 먼길을 달라져왔지만 이들을 위한 무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전박대당한 그들은 도심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국제예술제를 등지고 교외의 빈 창고, 지하실, 거리의 허름하고 가난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공연을 선보인다. 이것이 초라했지만 당당한 '프린지페스티벌'의 출생신고였다.

그후 '프린지페스티벌'은 주류 예술축제의 엘리트주의적인 프로그램 방식이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예술창작활동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자발적 의지를 총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변방 혹은 주변부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미래지향적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자발적 축제공동체를 뜻하게 된 것.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해프닝은 점점 더 많은 예술가와 관객들의 호응과 참여를 얻어 프랑스의 아비뇽페스티벌 호주의 아들레이드프린지페스티벌로 이어진다. 1980년대 들어서는 북미 지역으로 퍼져가기 시작해 잠재적으로 존재하던 독립예술단체들의 창작을 활성화시키고 지역의 문화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캐나 벤쿠버, 위니펙, 빅토리아, 토론토 몬트리올 등의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렸고, 이러한 현상은 프린지 무브먼트라는 신조까지 만들어냈다. 한국 프린지축제의 효시는 1998년 처음 열린 서울프린지페스티벌. 11회째를 맞아 올해 8월 서울 홍대 앞에서 펼쳐진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 축제가 펼쳐져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관객은 소극장 뿐 아니라 야외의 거리와 로터리, 공원, 지하보도 그리고 카페, 클럽, 갤러리에서 각양각색의 공연·작품을 즐기거나 직접 참여할 수 있고, 230여개의 공연자 및 팀이 참여해 연극, 무용, 마임, 인형극, 음악, 미술, 퍼포먼스와 이를 혼합한 복합장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연출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