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 한글백일장] 산문 일반부 장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송미숙(구미시 진평동)

"엄마, 일어나. 빨리 창밖 좀 봐, 아침이야."

모처럼 맞은 일요일이다.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때문에 휴일 수가 부족하다 보니 일요일도 몇 번은 근무를 해야 한다.

일요일날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한없는 여유가 생겨 늦게까지 그 유명하다는 미국드라마도 보고, 케이블 TV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다가 잠이 들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조그만 바람이 나에겐 사치였나 보다. 여섯 살 난 둘째딸은 애기 적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아서 그 수면습관이 꼭 닮아버렸다. 일찍 자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식구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이런 둘째딸의 습관 덕에 지각할 일이 없어 좋지만 모처럼 맞이한 일요일 아침엔 그 습관이 나에겐 아주 독한 독이 된다. 늦잠을 포기한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건 아침을 준비해야 한단 사실이다. 남보다 이른 출근시간 덕에 저녁에 아침밥과 국을 미리 준비해 두면 남편이 아이들과 아침을 차려 먹는 상황이었다. 남편도 오늘 아침만은 나에게 대접받고 싶은 눈치다.

늘 한 끼 이른 식사를 하다 보니 데워 먹는 국에 물릴 만도 하다. 그래 따뜻한 국을 먹고 싶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 퇴근하면서 평소 식구들끼리 즐겨가는 곱창집을 들러 2인분을 포장해왔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니 가끔 애용하는 메뉴다.

냉장고에서 꺼내 비닐을 뒤집어 곱창을 전골냄비에 올려놓고 불을 올린다.

그리고 밥솥에 쌀을 씻어넣고 물을 재고 스위치를 켠다.

그새 둘째 애는 TV에서 만화채널을 찾아 열중하고 있다.

가스불에 올려놓은 곱창이 얼큰하고, 달착지근한 냄새를 뱉어내면서 끓어오른다. 그 냄새에 남편이 깼는지 눈을 비비며 나온다. 부엌에 와서는 냄비를 열어보고선 약간 실망하는 눈빛을 보인다.

신혼 초에는 요리책을 펴놓고 이런저런 요리도 하고, 손님도 초대해 식사대접도 하곤 했었는데 직장생활 15년 만에 얻은 건 포장음식 중에서 어디가 맛있는지에 대한 정보이다.

이러니 남편과 아이들에겐 정말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식구들이 제발 맛있는 밥 좀 해달라 하면 저기 맛있는 식당이 있더라며 데리고 나가기 일쑤였다.

이 모든 사실들은 나의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성공할 거라며, 그러기 위해선 나를 도와줘야 한다며, 그런 불편함은 참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생긴 일들이다.

어찌 먹을거리뿐인가? 퇴근 후에는 여기저기 강의의뢰를 대책 없이 받아서 또 집에 늦게 들어가고 목요일엔 대학원 수업 때문에 또 늦게 들어가고, 그러니 거의 매일을 남편과 아이들만 두는 셈이다.

늘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잠을 더 청했었다.

아침을 준비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것 또한 오랜만에 맞이한 일요일에 얻은 덤인가?

둘째 애에게 따로 먹일 음식을 준비한다.

잡곡밥을 따로 하고, 몇 가지 야채를 준비하고… 당뇨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집안에선 엄마로서, 아내로서,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책임자로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 이렇게 많은 역할을 잘해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라고 자위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의 불편함을 무시하고 살아왔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진지하게 되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 돼버린 뒤였다.

어느 날부터 살이 갑자기 찌기 시작한 둘째 애가 물을 많이 먹기 시작하고 오줌을 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직업이 간호사인지라 심상찮은 느낌으로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 애는 소아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었다.

또 이것의 원인이 대부분 비만에서 온다 하니 이것은 나에게 천형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침엔 애들 밥상보다는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영어학원으로 내빼고 낮엔 직장에서 일하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자기계발이라는 미명하에 뭐 배우러 다니고, 강의 다니고…

그동안 나는 엄마, 아내, 수간호사로서 살아왔던 게 아니고 단지 수간호사로 단지 ○○○으로만 살아왔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두 딸아이의 엄마이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면서 살뜰하게 아이들을 보살피는 엄마이다. 엄마이고 싶다.

둘째 딸의 당뇨식이를 준비해서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떼쓰는 걸 억지로 달래서 먹인다. 아침을 챙기기 위해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퇴근 시간 후의 일과도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정리를 하였다.

나는 훌륭한 강사이기 이전에, 훌륭한 수간호사이기 이전에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엄마이다.

나는 두 딸아이의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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