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손님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그래도 명색이 설 대목이 아닙니까. 평일보다야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설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매출 감소로 울상을 짓던 재래시장 상인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미소가 되돌아오고 있다. 아무리 사상 유례 없는 불황이라 하지만 설 반짝경기는 올해도 어김없이 형성되고 있기때문이다.
22일 오전 7시 영천시 완산동 공설시장에는 아침부터 설 제수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장보기에 나선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영천의 명물, 돔배기를 주로 판매하는 어물전에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도 꽤 눈에 띄었다. 5일장(2, 7일)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듯했다.
하지만 흥정하는 모습은 많았지만 매매는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다. 손님들은 흥정만 하다 발길을 돌리거나 주저하기 일쑤였다. 장을 보러온 김은미(45·여·대구 수성구 범물동)씨는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음만큼 구입하지 못했다"며 "돔배기를 평소의 반만 사 겨우 흉내만 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5일장이 선 안동시 옥야동 중앙신시장에도 아침부터 손님들이 찾아와 모처럼만에 활기를 찾았다. 도로 한쪽은 대목 특수를 노린 노점상들로 꽉 메워졌고 차량과 사람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어물전을 운영하는 김상희(64)씨는 "그동안 뜸했던 손님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물량을 늘려서 들여 놓았다"며 "아무리 어려워도 조상님 차례상을 빼먹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돔배기·조기 등 제수용품을 30여년째 팔아온 김정분(67)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백화점이나 대형소매점에서 차례상 차림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시장에 오면 덤도 있고 인심도 얻어 갈 수 있다는 걸 몰라 안타깝다"며 재래시장의 장점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올해 설 대목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질보다 가격을 우선하고 흥정이 오래 걸린다는 것. 서민들의 지갑이 더욱 얇아지면서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미순(48·여)씨는 "손님들이 지갑을 열 때까지 너무 많은 흥정을 해야한다. 원하는 대로 깎아주다 보니 본전치기도 많고 약간의 이문 남기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했다. 선물용 수산물을 많이 취급하는 건어물전 한 상인은 "손님들이 보통 2만∼5만원 정도에 선을 그어놓고 멸치나 오징어·김 등으로 세트를 구성하고 있다"며 "선물하는 범위를 대폭 줄였다는 말도 단골들로부터 자주 듣는다"고 했다.
주부 백미경(42·포항 용흥동)씨는 "가격이 오른 것 같지는 않은데 지갑이 얇은 탓에 선뜻 장바구니에 담기가 망설여진다. 돈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올해 설 장 보기가 어느해보다 힘든 것 같다"고 했다.
농촌지역의 재래시장은 사정이 그래도 나아보였다. 영덕 재래시장의 경우 대도시 시장과는 달리 지난해와 비슷한 설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것. 영덕시장과 강구시장 등은 이번 주 들어 과일과 고기 등 제수용품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설 직전인 24, 25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상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화사업을 끝낸 영해시장의 상인 김모(54)씨는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10%가량 늘어났는데 영덕은 농·어업이 70%인 산업구조 때문에 국내 경기침체 한파가 아직 미치지 않은 것 같다"며 "차분하면서도 다소 활기가 있는 설 대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구·엄재진·박정출·이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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