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국내에 달리기 열풍이 불면서 마라톤 대회도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5㎞에서부터 풀코스(42.19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는 현재 국내에서만 400개가 넘는다. 참가자가 부족해 슬그머니 없어지는 대회가 속출하고, 새로 생기는 대회도 많다 보니 정확하게 1년에 몇 개 대회가 열리는지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다. 마라톤 관련 사이트들을 검색한 결과 이달에만 50개 이상의 마라톤대회가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달 5일에는 매일신문사와 영주시가 주최하는 소백산 마라톤대회를 비롯해 5개 대회, 대구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리는 12일에도 경기, 충북, 경남, 전남 등에서 7개 대회가 열린다. 주최도 지방자치단체, 체육 관련 단체, 대학 등으로 다양하다.
대회가 워낙 많다 보니 참가자 유치 경쟁에 불꽃이 튄다. 풍성한 기념품 제공은 기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역 축제 혹은 특산물, 명소 등을 연계해 대회를 여는 게 대부분이다.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라톤대회만큼 좋은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웃돕기나 환경보호 등 특화된 주제로 열리는 대회도 상당수다.
대구는 마라톤대회 붐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마라톤대회는 2001년 하프코스 대회로 시작한 지 9년만에 국제대회로 승격했고, 참가자 수도 1만2천명을 훌쩍 넘어 당당히 국내 4대 대회에 포함됐다. 풀코스를 도입한 지 불과 3년만의 일이다.
◆대구마라톤대회 급성장 원인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코스를 달린다!'
대구시가 2009대구국제마라톤대회를 홍보하면서 가장 앞세운 구호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코스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마라톤 동호인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달릴 대구 도심을 먼저 달려볼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주경기장이 될 대구스타디움을 출발, 대구 도심을 돌아오는 코스를 대회 전에 달려봤다는 사실은 동호인들이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얘깃거리다.
대회 코스를 지난해와 다르게 만들어 기록 내기가 한층 좋아졌다는 점도 동호인들이 대구대회 참가를 결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지원단 김인환 단장은 "지난해 코스는 대구를 동서로 돌아오느라 오르막내리막이 17곳이나 됐는데 올해 코스는 담티고개와 솔정고개 두곳만 힘들 뿐 대체로 평탄하다"며 "1분 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동호인들에게 쉬운 코스는 대회 선택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불경기 속에 마라톤대회가 급증하면서 대회들 사이에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도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마라톤 동호인들이 거주지 외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 번 참가하려면 참가비와 교통비, 숙식비 등 경비가 15만~20만원에 이른다. 예전에는 매년 봄 가을에 6, 7개 대회에 참가하던 마니아들이 최근에는 경비 부담 때문에 2, 3개로 줄이는 추세다. 참가 대회를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은 대회 규모다. 대구 대회는 풀코스를 시작한 첫해인 2007년에 참가자가 1만명을 넘어 대형 대회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만큼 동호인들의 선택 확률이 높아졌다.
시기적인 면에서도 적절하다는 평가다. 국내 최대 규모 대회인 서울국제마라톤(올 3월15일)이 열린지 4주 뒤이기 때문에 봄에 2개 대회를 참가하기로 했다면 서울과 대구 대회를 선택하는 게 체력적으로 무난하다는 분석이다.
두둑한 대회 상금도 참가자 유치에 촉매가 된다. 엘리트 부문의 경우 외국인 선수에게는 1위 8만달러(여자부 4만달러), 2위 4만달러(2만달러), 3위 2만5천달러(1만5천달러) 등으로 국내 어느 대회 못지않게 상금이 크다. 최고기록 2시간6분47초인 윌슨 온사레(33·케냐), 알렉산더 쿠진(31·우크라이나·2시간7분33초)과 에드윈 코멘(29·케냐·2시간7분45초) 등과 여자부의 쳅춤바 조이스(39·케냐·2시간23분22초), 로즈 체루이요트(33·케냐·2시간25분48초) 등이 참가를 결정한 데는 굵직한 당근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선수에게도 1위 2천만원(여자부 1천만원), 2위 1천만원(500만원) 등 상금 규모가 적잖다. 여타 대회에서는 잘 시행하지 않는 동호인 부문 시상금도 6위까지 주어진다. 풀코스 1위 100만원, 2위 80만원 등이며 10㎞에도 50만~10만원의 상금을 준다.
◆국내 주요 대회는
대구국제마라톤대회와 비교해 역사나 규모 면에서 앞서는 대회는 3개 정도가 꼽힌다. 동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와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중앙서울마라톤 등. 대구 대회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국제대회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기 위해 노하우를 배우고 뛰어넘어야 할 대회들이다.
서울국제마라톤은 보스턴마라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1931년에 경성~영등포 마라톤대회로 시작한 지 올해로 79년, 횟수로 80회를 맞아 지난달 15일 열렸다. 서울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 앞을 출발해 청계천~서울숲~잠실대교를 거쳐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는 도심 횡단 레이스다. 김완기는 1990년 대회에서 처음 풀코스에 도전해 한국기록을 깨며 처음으로 2시간12분벽을 넘었다. 황영조는 1991년 대회에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해 1초 차이로 아깝게 3위에 입상했으며, 이봉주는 1995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도 만만찮은 역사를 자랑한다. 1946년 단축마라톤으로 1회 대회를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손기정 세계제패기념 대회로 열렸다. 1회 대회 때 우승한 서윤복은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의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했다. 1957년 대회에서 우승해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창훈은 이듬해 동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1985년 우승자인 김원탁은 1990년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했다. 춘천 의암호 순환코스에서 10월에 열리며 2003년 이후 매년 2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매머드 대회다.
중앙서울마라톤은 1999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잠실지역을 순환하는 하프마라톤으로 창설된 이후 10년만에 2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회로 성장했다. 올해는 11월 1일에 잠실에서 성남을 오가는 코스에서 2만5천명이 참가한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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