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호시비' 400년 논쟁 끝나나 했더니…

호계서원(虎溪書院·경북도 유형문화재 35호) 좌배향(左配享)을 둘러싸고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문중 간에 빚어졌던 '병호시비'(屛虎是非)가 400여년 만에 일단락됐다는 소식(본지 1일자 2면 보도)에 호계서원 건립에 참여한 퇴계 후학 문중 후손들이 발끈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호계서원을 건립한 터에 문중 후손들의 합의로 서열을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전주 류씨와 한산 이씨 비롯해 30여명의 퇴계 선생 후학 문중 후손들은 최근 안동지역 한 음식점에서 병호시비 합의 소식 관련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병호시비는 단순히 양 문중 간 서열을 따지기 위한 갈등이 아니다."며 "당대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안동지역 두 거목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이 함께 담겨 있는 문제로 긍정적 시비는 계속 이어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몇몇 특정 가문이 나서 배향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양 문중의 배향 합의와 더불어 전국 유림들의 뜻을 받들어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 윤여빈 전문위원은 "두 가문의 종손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며 "수백년간 갑론을박하며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켜 온 양측 유학자들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합의는 관찰사보다 영의정 벼슬이 높다는 이유로 서애를 윗자리에 모시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윤 전문위원은 또 "서원에서 위패의 소목(昭穆·신주 모시는 차례)은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선생님을 순서대로 모시는 것"이라며 "학덕·연령·국가에 대한 공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단순히 벼슬 높낮이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균관 관계자도 "서원에서 위패를 모시는 일을 후학이 아닌 가문 사람들이 논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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