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 보기]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왕방연 -

천만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아 33차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조선왕릉 40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해인사 장경판전, 1997년 종묘·창덕궁·수원 화성, 2000년 경주 역사유적지구와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이 지정된 것에 이어 아홉 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2004년에 지정된 북한 및 중국 소재 고구려 고분군을 포함하면 우리 민족의 세계 유산은 10건이다. 자랑스런 문화민족이다. 조선엔 27명의 왕이 있었다. 그런데 27기가 아닌 40기가 된 것은 생전에는 왕이 되지 못했으나 나중에 왕으로 추봉된 경우도 있고, 왕비의 무덤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40기의 능 중에 유독 사적196호로 지정되어 있는 제6대 단종의 장릉(강원도 영월군)과 사적209호로 지정된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경기 남양주시)이 눈에 밟힌다.

이 시조는 왕방연(王邦衍·연대 미상)의 작품.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단종이 12세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453년부터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실권을 뺐기고,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었다.

1456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이 처형되고,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1457년 9월 숙부 금성대군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 서인(庶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0월에 죽음을 맞았다.

'천리, 만리 먼 곳에 와서 고운 님(단종)을 이별하고/ 혼자 돌아가는 길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냇가에 앉았으니/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도 내 슬픈 마음과 같아서 울면서 밤길을 가는구나!' 참으로 아픈 노래이다.

왕방연, 그는 의금부도사였으니 단종의 심복은 아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는데 그의 정감이 각별함을 알 수 있다. 초장은 어린 임금에 대한 최대의 애정과 공경의 뜻을 바치고 있으며, 중장은 비분을 멀고 깊은 곳으로 끌고 가고 있다. 종장은 냇물의 영원한 흐름 속에 관리로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지만 씻을 수 없을 것 같은 죄책감을 흘려보내고자 한 뜻이 들어 있다.

문무학 (시조시인· 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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