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짜르의 마지막 함대'

바다를 장악하는 자 세계를 장악한다.

■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표완수· 황의방 옮김(중심, 2003)

여름 무더위가 실체를 드러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각양각색의 피서 인파가 순식간에 삼면 바닷가로 흩어집니다. 마치 난리통에 피란을 가듯 재빠른 행락객들의 움직임은 오랜 시간 훈련되어 이미 습관화된 모습입니다. 더위가 오면 무의식적으로 바다로 향하는 사람들, 그만큼 우리의 바다가 아름답고 좋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만큼 아픔도 많았습니다. 거제도가 그랬고, 서해 5도가 그렇습니다. 특히 독도는 아직도 종기로 남아 쓰라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아픔의 원초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제도를 노렸던 영국이나, 백령도가 필요한 미국이나, 독도를 고집하고 있는 일본 모두 해양 강국들입니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제패한 경험이 있는 국가들입니다. 그 중 일본은 가장 독특한 해양국가입니다. 몇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국가, 방어종심이 얕아 외적의 침입에 취약한 입지조건, 규모로 보면 어느 모로 보아도 소국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세계 최강국 대열의 선두에 있습니다.

그 시작은 1894년 중국과의 청일전쟁이었습니다. 국제전에 첫 선을 보인 일본 해군은 중국을 제압하고 삽시간에 대만을 삼켰습니다. 1863년 8월 사쓰마번의 다이묘(大名)가 대영제국과 전쟁을 벌일 무렵만 하더라도 일본은 영국군의 함포사격에 사무라이의 칼로 대적하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유럽 최강국의 하나인 러시아 함대까지 전멸시킵니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열강과 싸워 이긴 최초의 전쟁입니다. 아시아의 소국, 갓 국제 무대에 데뷔한 일본이 어떻게 최강 러시아 함대를 이겼을까? 어쨌건 그 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최소한 1945년까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일본인들은 강한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교수의 '짜르의 마지막 함대'(중심, 2003)에 있습니다. 만약 피서지를 바다로 택한 분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 한 권쯤은 지참하기를 권합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당신을 치열한 국제정치의 무대로 이끌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백 년 전의 이야기들이지만 결코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시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해를 지나 영국 도버 해협, 아프리카의 희망봉, 동남아 말라카 해협을 거쳐 지구를 한 바퀴 가까이 돈 뒤 일본과 결전하여 전멸한 러시아 함대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때 동해에 침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는 소문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러시아 함대의 이야기입니다. 1905년 5월 27일, 당초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을 때는 38척의 함선 가운데 3척만이 남았습니다. 19척이 격침되고 7척이 나포되었습니다. 수병 5천명이 전사했고, 6천106명이 생포되었습니다. 전쟁 결과는 러시아의 완전한 패배, 일본의 완벽한 승리를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영국이 있고,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의 봉쇄정책이 있습니다. 왜 일본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영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냉전이 끝난 지금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독서의 일미(一味), 책 속에서 영웅을 찾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에 비유될 수 없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 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 는 말로 우리의 기억을 차지하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그는 진정한 해전의 영웅입니다. 오래된 무사 가문의 출신인 그가 수병이 되어 영국으로 간 이유는? 영어도 형편없고, 영국 자체도 증오하던 스물 네 살의 일본 청년이 영국으로 간 이유를 찾는 것도 탐독의 재밋거리가 될 것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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