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간 현안이나 동북아 지역 문제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일본이 한국을 배제한 채 3국 간 외교 협의체를 신설한다거나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 문제, 미사일 지침 개정 등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그것이다. 어느 것 하나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입장이 반영되지 못한 채 추진되거나 한국의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이를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3국 협의체 구성의 실체는 미'중'일 3국이 글로벌 이슈나 동북아 문제에 관해 긴밀한 대화 채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외교적 입지가 그만큼 좁아지는 동시에 한반도 관련 정책 결정에서 한국 정부가 제외되면서 주변 강대국의 입맛대로 좌지우지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이에 따른 파장을 애써 낮게 평가하고 있지만 국내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가쓰라'태프트 조약까지 언급하며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미 국무성 고위 관리의 한국의 핵 재처리 문제와 관련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엘런 타우처 비확산'군축 담당 차관이 상원 외교위원회에 보낸 서면답변에서 "한국의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유럽연합과 일본, 인도에 대해서는 핵연료를 재처리하도록 동의했지만 한국에는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사용 후 핵 연료 처리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고민이나 긴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미국은 미국의 원칙과 이익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힘과 영향력을 키우지 못하면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지난 2월 말 일본은 아소 다로 총리의 방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미'일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목적이었지만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첫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 의미를 뒀다. 실제로는 정상회담을 통한 일본의 위상 점검이나 미'일 관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정 탓인지 아소 총리가 전례 없이 푸대접을 받았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영빈관이 아닌 워싱턴의 한 호텔에 묵으며 오바마 대통령과도 고작 1시간 대면하는 데 그치자 당시 외신들은 '단 1시간의 정상회담을 위한 1만1천㎞의 장시간 여행'이라며 비꼬듯 보도했다. 특히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런 홀대에 대해 "내정도 외교에 영향을 미친다"며 "아소 총리를 일본 총리로서 중요하게 대접하지만 정치가끼리의 개인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마음까지는 없었던 게 아닌가. 일본 내정의 현실을 직시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고 보도했다.
이번 논평의 범주에 한국도 절대 예외가 될 수 없다. 말로만 세계 경제 15위 규모를 내세우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가 위상은 이보다 한참 밑이다. 여야가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개정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우리 주변국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철저히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물리력으로 자기 이익을 지켜내거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없다면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신뢰를 얻는 노력이 중요하다. 일본은 원자력협력협정을 통해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에 신뢰감을 주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미국 내 여론을 일본 쪽으로 돌려놓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게 실용외교다.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자기 이익과 위상을 지켜낼 때 그 외교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상대에게 신뢰감과 잠재력을 보여줘야 영향력도 커진다.
정부나 국회, 국민들이 과거 방식대로 국가 현안을 안이하게 풀어간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아가기는커녕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당면 과제에 대한 해법에 '고민하는 힘'이 없다면 국가이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외교의 장에서 한국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다. 이제라도 "한국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러나…"라는 수사의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徐 琮 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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