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내 가족이 먹는다 생각하고 만듭니다"라고. 하지만 실제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동반하는지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식당업을 41년째 하고 있는 조다영(63) 봉화한약우 사장의 음식점 냉동창고는 많은 함의를 내포한다. 여기에는 식재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것은 제철 재료들을 생산지에서 직접 수매해 1차 손질을 끝낸 것들이다.
"이건 청송 고춧가루, 이건 들깨가루, 이건 멸치, 또 이건 완두콩이에요. 겨울에도 완두콩밥을 해놓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시골 할머니 보따리처럼 연이어 나오는 수십 개의 묵직한 비닐 봉지 속에는 번호를 매긴 재료들이 작은 봉지로 나뉘어 얼려 있다. 번호를 매긴 것은 사용한 양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깨끗이 씻어 말린 후 재료에 따라 갈아두기도 하고 볶아두기도 한다. 이 많은 재료들을 손질하느라 그는 수백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그는 식재료에 관한한 시장도 못 믿는다. 제철에 산지에 가서 직접 수매한다.
"멸치는 통영에 가서 600포씩 직접 보고 사와요. 젓갈은 거제도에 가죠. 의성 마늘밭을 밭떼기로 산 후 우리가 직접 가서 마늘을 수확합니다. 참깨도 몇 가마씩 사뒀다가 깨끗이 씻어 말리고 잡티를 손으로 일일이 가려내 인근 기름집에서 짜서 쓰죠. 단가 높은 국산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질 않아요."
조 사장의 고집은 고춧가루에서 빛을 발한다. '태양초'도 못 믿는단다. 청송에 가서 사온 고추 1천여근을 물수건으로 직접 닦고 손질해 말린다. 그 후 인근 방앗간에 가서 직접 빻아오는 식이다. 본인 손으로 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이쯤되면 '의심병'에 가깝다.
조미료를 대신할 천연조미료는 표고버섯과 내장을 제거한 후 볶아낸 멸치'민물새우'양파'무'다시마 등을 깨끗이 씻어 바짝 말린 후 갈아둔다. 이것들을 말리기 위해 전용 전기 패널까지 마련해두었다.
어지간한 주부들도 깜짝 놀랄 만한 부지런함이다. 조 사장 자신도 '식당일에 타고 났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한테 얘기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지인들이나 자식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고생을 왜 하냐고, 이제 그만 하라고 말리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아마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눈 감기 전까지 할 겁니다."
그의 옥상 장독대에는 된장'간장 단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10년 이상된 된장 단지도 있다. 김치냉장고에는 5년 이상 숙성된 김치가 익고 있다. 된장'고추장'김치를 직접 담그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엿기름까지 손수 만든다. 이만하면 조 사장의 고집을 알 만하다. 식재료 납품 업체가 많은데도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식재료를 마련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41년 전 대구극장 앞 고기집을 시작으로 앞산 '보리피리 레스토랑', 대봉동 '마산 아구찜' 등 대규모 식당을 운영해오고 있다. 한'양'중'일식 등 해보지 않은 업종이 없고 사람이 줄을 이을 만큼 성공한 메뉴도 많다.
요식업계 원로라 할 수 있는 그는 '먹을거리'에 대한 철학이 남다르다.
"요즘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젊은 사람들이 퍽퍽 쓰러지는 건 다 먹을거리 때문이에요. 요즘 음식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도 식당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식당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뭐든 원재료 맛을 살려야지, 불필요하게 매운 맛, 진한 양념은 제 맛을 잃어버리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그는 올여름 별미로 한우 도가니곰탕과 삼계탕을 마련했다. 보통 육우뼈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한우 고기집 특성상 한우뼈만 사용한다. 한우뼈와 소고기'양'수지를 48시간 우려낸다. 곰탕류는 핏물 우려내는 과정이 맛의 비결. 처음에 찬물에서 핏물을 빼고 한소끔 데쳐서 그 물을 버리고 난 후 고아내야 맛이 좋다. 기름을 계속해서 걷어내기 때문에 기름기 없이 깔끔하다. 조 사장은 "보약이나 다름없는데 사람들이 몰라준다"며 섭섭해한다. 삼계탕도 엄선한 닭을 사용, 각종 한약재를 넣고 만든다. 메인 메뉴인 한우는 A++, A+ 등급 최고급 한우만 사용한다.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을 터. 하지만 그가 식당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음식에 대한 사랑과 40년 노하우에 대한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세대가 가고 나면 이제 이런 음식 구경 못할 겁니다. 모든 음식을 색깔만 봐도, 첫술만 떠봐도 재료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토종 음식들이 사라지고 있죠. 특별히 혀에 감기는 맛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도 문제입니다."
그는 딸들을 위해 자신의 요리 비법을 담은 노트를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것이 먼 훗날, 우리 시대의 먹을거리를 후세에 남기는 '음식디미방'이 되지 않을까. 그의 식당 한켠에 매실과 앵두, 산머루주가 익어가고 있다. 이곳의 음식값은 봉화특갈비살 1인분 1만7천원, 도가니곰탕 8천원, 삼계탕 9천원. 053)527-2727.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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