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례식장 주민·병원 마찰에 "상주만 불효자"

빈소철거 요구에 한밤중 시신 옮기는 소동

"부친상을 당한 게 죄입니까?"

지난달 30일 새벽 부친상을 당한 손모씨는 하루 사이 시신을 두 번이나 옮겨야 했다. 장례식장을 구하지 못해 대구 중구 A대학병원에서 운명한 부친의 시신을 남구 D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긴 게 화근이었다.

이날 저녁 D병원 장례식장에는 주민 30여명이 몰려와 소란을 피웠다. 손씨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들어오더니 삿대질에 욕설을 했다"며 "빈소에 들어와 상까지 엎으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족들은 '상만 치르고 나가게 해달라'고 무릎까지 꿇고 통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씨는 "다른 장례식장을 알아볼 테니 자정까지만 참아달라고 애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일부 주민들은 아버지 영정까지 빼앗으려 했다"고 억울해 했다.

부랴부랴 B대학병원 장례식장을 구해 부친의 시신을 또 옮겨야 했던 손씨는 "주민들이 '시신이 진짜 나가는지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해 피란 가듯이 아버지 시신을 옮겼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조문객들에게 망신을 당하게 했으니 불효자가 된 기분"이라며 "4일 삼우제를 지내고 주민들한테 찾아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지만 주민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너무 화가 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번 일은 지난 2월부터 불법 장례식장을 설치, 운영하고 있는 D병원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3주 전쯤부터 장례식장 철거를 요구하며 집단 행동에 나섰으나 병원 측이 항의 집회를 막기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집회 신고를 선점해 양측 갈등이 더 깊어졌다. 아파트 주민대표 이모(63)씨는 "병원 측이 주민 집회를 막고 개업을 강행해 주민들이 흥분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유족 측에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도심 내 병원 장례식장 운영은 불법이다. 국토법과 대구시 조례 등에는 '용도지역 중 주거지구나 미관지구로 지정된 곳에서는 장례식장을 설치·운영할 수 없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일부 병원에서는 지자체에서 경찰 고발과 벌금부과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 남구청이 지난달에 이어 이달 초 2차 시정지시까지 한 D병원도 사법당국 고발과 이행강제금 부과가 예정돼 있지만 영업을 강행하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

주민과 병원 측 갈등은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 16일 병원 장례식장을 건축법 시행령의 '장례식장'에서 제외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됐고, 세부안도 곧 결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D병원 측은 "법적인 문제는 조만간 일단락될 것"이라며 "주민들 주장대로 병원 내 장례식장으로 인해 도로폭이 좁아지거나 주거 환경에 변화를 주고 통행인들에게 혐오감이나 불편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장례식장 철거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집단행동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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