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친구에게

"빡빡머리 여드름 병영 뒹굴던 전우 이 글 보면 연락해"

서정수
서정수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사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윤육한(대구 수성구 범어4동)

다음 주 글감은 '비상금'입니다.

♥전우들, 날잡아 추억여행이라도 떠나자

이른 아침 피부에 맞닿는 서늘한 공기가 제법 상쾌하다. 질퍽하고 끈끈했던 장마도 지나가고 벌써 서리가 내린다는 백로구나. 시외로 나가 보니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곡식들이 알차게도 영글고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개념 없이 사는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란 듯이 모두가 겸허히 고개를 숙일 차비를 하고 있다. 고랑마다 빨갛게 물든 고추를 따는 아낙네들 손길이 마냥 분주하다. 머지않아 가을걷이에 농부들의 마음이 풍요로울 것만 같다. 잎 푸르고 짙은 녹색 내음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서서히 골골마다 나뭇잎들이 고운 색으로 자태를 뽐낼 시절이 다가올 거다. 남자들은 가을이 오면 아름답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평소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그리워하며 작고 애틋한 향수에 젖은 추억들을 더듬고 싶을 것이다. 나만 그럴까? 갑자기 고향 친구도 보고프고, 군대에서 같이 훈련받던 전우도 그립고, 사춘기적 미래를 같이 꿈꾼 짝꿍도 만나고 싶고. 다들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지낼까? 벌써 어엿한 중년의 나이가 되니 새삼 보고프고 너무 그립다. 가끔 초가을 잎새 이는 바람에도 행여 은은한 사랑이 다가와 줄까 목말라 하면서…. 친구들! 전우들! 옛 사랑들아! 날 한번 잡아 우리 추억 여행이라도 한 번 하자꾸나!

주름 깊고 귀밑머리 허예 가니 괜스레 한숨 소리가 절로 나고 추남들의 계절이 왔긴 왔나 보다. 더 늙기 전 만나 술 한 잔 나누며 거나하게 취해 우리 남은 인생 서로 위로하며 진실한 의리 맞교환하면 어떨까?

친구들아! 진짜 보고 싶고 그립구나. 대구에서 너희들을 그리워하는 친구 정수가

서정수(대구 달서구 이곡동)

♥ "나의 대학생활이 너에게 고통이었다니"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1972년 고교를 졸업하고 11년이 더 흐른 시점이었다. 처음 3, 4년 동안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여전히 둘도 없는 친구로 그 벽을 헐어내고 있었다. 나름 대학 생활을 즐기던 나에 비해 집념처럼 이어지던 그의 대학 도전기는 예고된 비극을 보는 것과 같은 애틋함이 앞서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만류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조차 꺼내지 못했었다. 3대 독자 아들이 혹시나 빗나갈세라 그의 부모님들은 친구의 외출을 극도로 단속하던 터였다. 유일한 친구였던 내가 가끔 그의 숨통을 틔워줄 뿐이었다. 몇 년간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책과 씨름하던 그와 내가 한 번씩 향하던 곳은 바로 그의 집 앞 앞산공원이었다. 산 중턱 샘물이 솟아나는 곳에 발을 담그고 그는 답답한 마음을 내게 토로하기도 했다. 불 같은 그의 성미가 집에서만 감시당하듯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세월이 지나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울산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기타를 들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네가 치는 기타 소리가 듣고 싶어." 그날 밤 우리는 못 하는 술 한 잔씩을 마시고 밤새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가 떠나기 전 내게 내민 편지 한 통. "넌 내겐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너의 대학 생활이, 따스한 너의 가정이 너무나 부러웠다. 난 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거든. 근데 네가 집에 왔다 갈 때면 난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네가 간 후로는 너의 모든 행복 조건을 증오하기 시작했지. 오랜 대학입시 준비보다 더 힘든 게 너를 보는 거였다."

아! 나는 끝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미안하다. 친구야. 친구의 아픔보다는 자신의 현실을 네 앞에 과시한 꼴이 되고 만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그와 헤어진 지 어언 27년. 친구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슴만 저려온다.

서웅교(대구 수성구 범어4동)

♥가을 시집 읽으며 친구를 떠올리네

9월 달만 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아직까지도 소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친구여! 오늘도 나는 벗을 생각하며 문득 안부 편지를 써야 되겠구나 하며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친구여! 지금 이 시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소일하고 있는가요?

오늘 저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어요. 가을이 철철 묻어나는 '가을바람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도저히 물러가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의 무더위도 시간 앞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힘이 빠져버린 온화한 햇살과 숲을 감도는 선선함은 가을이 잠깐 얼굴을 내미는 듯한 느낌입니다. 벗이여! 이제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공유하시라고 당부 드리면서 두서 없이 줄이옵니다. 다음에 다시 소식 드릴게요. 대구에서 당신 벗! 연희가 드립니다.

김연희(대구 남구 봉덕3동)

♥초등학교 때 너 때문에 3년간 가슴앓이

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에 생각하면 아련한 초등학교 때의 추억이 있다.

3년이나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다 겨우 고백해서 고작 30일 정도 함께했던 그 아이. 그때는 함께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내가 그 아이를 볼 수 있는 곳에 있다는 사실이 마냥 고마웠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중, 남고를 다니면서 등굣길에 딱 2번 마주쳤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화두로 그 아이가 드리워질 때, 괜스레 쓴웃음을 짓고 돌아서서 그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에게 주려고 산 곰 인형. 아직도 그 아이는 그 곰 인형을 가지고 있을까? 그 아이와의 추억은 지금 내가 학업을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옛날 초등학교 때 추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친구야! 가을이라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 건강 잘 챙기고 신종플루 조심해 ^(*)^

안병규(대구 동구 신천1동)

♥"다슬기 잡아놨다 너 귀국하면 같이 먹자"

친구야! 가을 하늘이 높고 눈부시도록 푸른 날, 난 너와 내가 함께했던 초등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이면 고무줄놀이 하던 정자나무는 잡초들이 에워싸고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아 먼지 풀풀 나던 운동장은 나를 멀뚱하니 바라보며 지나가는 행인 취급을 한다.

지난번 오랜만에 만났을 때 흰머리 들춰보며 '세월 이길 장사 없다'는 속담을 떠올렸었는데 몇 개월만 있으면 널 만날 수 있겠구나.

정자나무와 운동장에 무성한 잡초를 제거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이 풍덩거리며 멱 감던 시냇가에서 다슬기를 주워왔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주워온 다슬기로 찬을 만들어 식탁에 앉으니 친구야 네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친구야 너 오면 주려고 다슬기 냉동실에 얼려 놨다. 네가 고국에 발을 내딛는 날, 다슬기 들고 공항으로 마중 갈 테니 온다는 약속 꼭 지켜라.

이동연(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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