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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여성이 우대받는 사회 돼야"…문희 대한노인회 수석부회장

지난달 말 대한노인회 안필준 회장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전날까지 지역연합회를 돌며 활동하시다 다음날 아침 몸이 이상해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바로 숨을 거뒀다. 피로 누적으로 인한 급성 폐혈전색전증이 원인. 매일신문사에서 그를 인터뷰한 기사(7월 4일자 6면)는 살아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돼 버렸다.

고(故) 안필준 회장이 1년 전 여성노인들을 위해 17대 국회 여성가족위원장까지 맡았던 문희 전 의원을 대한노인회 수석부회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이것이 문 전 부회장이 대한노인회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젠 그의 죽음으로 인해 더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할 입장에 처해졌다.

대한노인회 권한대행은 당연직 수석부회장인 인천연합회장이 맡게 됐지만 문 부회장 역시 앞으로 이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입장에 처한 것. 그는 "아침저녁으로 헬스를 하고 그렇게 부지런하게 다니시던 분이 홀연 돌아가시니 허망하기만 하다"며 "안 회장이 이끌어오던 조직을 앞으로는 더 건강하게 체질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에 다시 대한노인회장을 선출해야 하지만 스스로 출마할 뜻은 없다. 경선을 한다는 것은 더 용납이 안 된다. 단 주변에서 여성노인들의 인권 신장과 대한노인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의견이 모아진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는 국회의원을 한 정치인이지만 자리 욕심은 전혀 없음을 다시 한번 밝혔다. 그 누구보다 노인과 여성문제에는 관심이 많다. 시대가 또 그렇게 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넘어 고령화·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에 노인문제는 특히 국가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 문 부회장의 구체적 생각을 들어봤다.

◆준노인(60~70), 중노인(71~80), 정노인(81~)

문 부회장은 노인이라도 다 같은 노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인계층도 더 세분화해 국가적 혜택도 달리하고 사회적인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핵심 논리. 그는 "나 역시 노인취급을 받는 나이인데 사실 준노인 정도 아니면 주니어 노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며 "60, 70대 중 건강하게 활동하며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노인이 얼마나 많으냐"고 반문했다.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60대는 준노인, 70대는 중노인, 80대 이상부터 정노인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럴듯했다. 기자 역시 아버지가 중노인에 가까운 준노인이지만 아직도 건강은 펄펄 날아다닐 정도이기 때문. 앞으로 저출산·초고령 시대에는 노인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도 눈 앞에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 지금의 청·장년인 30~50대도 곧 닥칠 문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직장 정년도 차차 65~75세로 조정하는 것도 그가 생각하는 은퇴 적정연령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국가가 노인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해줘야 할 정책사안이라는 것. 문 부회장은 "제 또래들은 지금 더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며 오히려 젊은 세대보다 사회기여도가 더 높을 것"이라며 "10일에도 전남 장성까지 가서 '고령사회와 신노인문화'에 대해 특강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노인정책에 있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질적(質的) 업그레이드'라고 조언했다. 노인문제에 있어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노인이 먼저 우대받는 사회가 된다면 국가의 품격(品格)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어릴 적 얘기를 하나 꺼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누구 집에 놀러갈 때도 항상 그 집 어른들을 먼저 찾아 절을 하고 난 뒤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입니까. 이런 아름다운 풍속을 되살리는 것이 구시대적인 것인가요?" 듣는 사람이 뜨끔했다. "맞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은 '선(先) 성장 후(後) 분배' 정책에 따라 항상 뒷전에 밀려 있었으며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사회보장 비율은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노인복지도 당당히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육아는 국가책임시스템

문 부회장은 여성의 사회생활에 있어 가장 큰 애로점인 육아문제에 대해 '국가책임시스템'을 언급했다. 아이만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책임져주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다는 것이 '국가책임시스템'의 큰 줄기다. 영·유아의 육아에 필요한 보육시설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운영해 여성들이 맘 놓고 직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면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레 극복될 수 있다.

그는 17대 국회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여성들이 불임치료를 받기 위해 휴가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불임시술로 인한 근로자의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여성정책과 보육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영유아보육법 일부 개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이 두 법안은 저출산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것으로 지자체 등에서 공공시설 일부를 리모델링해서 보육시설로 전환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노인회에서도 문 부회장은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60만 노인회 회원 중 60%가 여성노인임에도 주요 임원(연합회장, 지회장 등)의 비율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노인들의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그는 "남성 회원들과 여성 회원들이 평등하게 토론하며 노인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 대한노인회가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과의 각별한 인연

문 부회장은 시댁이 경북 칠곡군 왜관이다. 영호남의 만남이었으며 그는 지금도 시댁 종중산에서 때마다 절을 올린다. 남편 쪽 집안은 교수, 금융계 쪽에 종사하고 문 부회장 쪽 집안은 의사 약사 집안이다. 아들과 딸이 의사이며 또 사위 2명 중 1명도 의사. 세 의사는 모두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구약사회와 경북약사회와도 막역한 사이. 그는 약사회 활동을 고향인 광주보다 대구에서 더 많이 할 정도로 이곳이 친근하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회장이자 대구약사회 임원을 맡았던 김계남 회원과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절친한 사이. 앞으로는 대구·경북지역 노인연합회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가설 계획이다.

지역 국회의원들과 여야를 막론하고 친하다. 한나라당 박종근, 서상기 의원과 친해 자주 통화하며 여러 가지 현안을 논의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이다. 그는 "시댁이 있어 그런지 대구·경북이 맘이 편하고 통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라고 털어놨다.

◆이런저런 활동들

그는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과결의안 통과에도 힘을 보탰다. 위안부 돕기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으며 미국 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와 워싱턴 정신대대책협의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미국 한 하원의원으로부터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노력한 결과로 감사의 서한을 받기도 했다.

또 중·고교생에게 방학 중에도 급식을 하도록 했다. 저소득층 중·고교생 24만명이 방학에 제대로 밥을 못 먹는 결식아동이므로 방학 중에도 급식을 제공토록 정부에 촉구해 이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

문 부회장은 보건전문가인 약사로서 전국에 있는 경로당과 노인대학, 노인종합복지관, 요양시설 등에서 노인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상담사 신설에도 교량 역할을 해 벌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신종플루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에 대해서도 "지난 수입쇠고기 파동 때도 냄비처럼 들끓었다 식은 것처럼 우리 국민이나 정부가 너무 과잉반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가사회적으로 차분하게 예방책을 강구하고 또 환자들에 대해서는 치료에 주력해 이런 신드롬 같은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문희? 1936년생. 광주 출생. 1남 2녀. 광주서석초교, 전남여중, 광주여고, 이화여대 약대. 중앙대 대학원 약학 박사. 한국여약사회장, 대한약사회 총회부의장 역임. 한나라당 서울시지부 여성위원장, 한국여성지도자연합 부총재 역임. 국회 보건복지위원, 국회여성가족위원장 역임. 현 대한노인회 수석부회장, 이화여대 총동창회 후원이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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