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인간이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독재자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희생을 몸으로 보여준 지도자이기도 했다. 자기희생은 두 독재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절대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의 하나였다.
질풍노도 같은 독일군의 공격 앞에 소련군이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1941년 8월 스탈린은 그 유명한 '명령 270호'를 전선에 시달했다. "항복하거나 포로가 된 자는 조국의 배신자로 간주한다." 이 명령에 따라 독일군에게 잡힌 장교와 병사의 가족은 전장에 나간 남편과 아들을 대신해 처벌받았다. 첫 희생자는 스탈린의 며느리였다.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는 명령 270호가 발효되기 전인 7월 초순에 포로가 됐지만 그의 아내는 2년의 강제노동형에 처해졌다. 스탈린은 포로로 잡은 독일군 고위장교와 아들을 교환하자는 독일의 제안도 거부했다. 야코프는 1943년 포로소용소 내 접근 금지 구역으로 일부러 걸어들어가다가 경비병에게 사살됐다.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0년 11월 24일 중공군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던 평안북도 대유동에서 미군 폭격으로 전사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참전을 만류하자 펑더화이(彭德懷) 총사령관에게 전선으로 데려가 줄 것을 직접 간청해 뜻을 이뤘다. 마오는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슬퍼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아들을 전선에 보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식만 보낸다면 내가 어떻게 중국 인민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로 지명된 총리와 각료, 대법관 후보자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하나같이 위장전입이나 중복 소득공제 사실이 드러났고 총리는 병역 면제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고위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는 '참 시시한' 모습이다. 이런 시빗거리는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그래서 "위장전입 한 번 하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저는 부모 자격이 없는 것인지 자괴감이 든다"며 검찰총장 후보자를 꾸짖었던 야당 의원은 겨 묻은 개 보고 짖어댄 똥 묻은 개 꼴이 됐다.
개중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운운하며 각성을 촉구한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따져보자. 이 같은 행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갖다 붙일 거리나 되는 걸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병역 의무 회피, 위장전입, 중복 소득공제는 더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 인사청문회는 얼마나 더 희생했는지가 아니라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을 얼마나 덜 어겼는지를 따지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우리 지도층의 도덕적 기반은 이렇게 허약하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재산 증식 능력은 갖췄지만 지도층에 필요한 도덕적 자기수련을 거친 사람들은 별로 없다. 압축성장이 이런 서글픈 현실을 낳았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두뇌만 명석하면 고위직이 됐고 부자가 될 기회는 널려 있었다. 모두가 기회를 잡기 위해 안달했고, 그런 풍토에서는 지도층으로서의 자각이니 도덕적 수련이니 하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도덕성 시비가 일 때마다 고위공직자들은 "과거에 별 생각 없이 했다" "그때는 다 그렇게 했다"고 둘러댄다. 지금의 도덕기준으로 지난 일을 재단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어림없는 얘기다. 이제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 시대가 달라졌다. 과거는 과거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이튼 칼리지는 주로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영국 인재의 산실이다. 1, 2차 세계대전 중 이 학교 출신 2천여 명이 전사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다니던 상류층 자제 중에서도 많은 전사자가 나왔다. 이러한 고급인력의 손실은 1, 2차 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몰락을 가져온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지도층의 이 같은 자기희생은 영국이 여전히 강국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힘이다.
물질적 풍요만으로 선진국이 되지 않는다. 고위 공직자마다 똑같은 도덕적 흠결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鄭敬勳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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