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큰 장인 서문시장 건어물 전에서 뱅어포를 샀다. 아내는 먼 곳에 살고 있는 막내에게 보낼 미역 멸치 오징어 등을 사면서 나를 쳐다보더니 "그걸 뭐하려고 사느냐"는 묵언 눈총을 쏘았다. 나는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해요"라는 투의 눈 힐금 총을 맞받아 쏘았다. 사망자는 없었고 이내 휴전에 들어갔다.
나는 도시락 반찬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뱅어포는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처음 맛 본 후 여태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아련한 추억의 식품이다. 뱅어포를 살 돈도 없었거니와 시골 오일장에는 아예 그런 물건이 나오질 않았다. 알루미늄 도시락 속에 끼워 넣는 반찬 통에는 김치 아니면 무장아찌가 계절에 관계없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는 추억의 식품
처음 맛 본 뱅어포는 빙 둘러앉아 먹을 때 그걸 갖고 온 친구가 "맛이나 보라"며 한 조각씩 나눠준 것이다. 김치와 된장의 입맛에만 젖어 있는 촌놈 입에 낯선 뱅어포구이가 들어가니 낯설고 신기하여 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예쁘장하게 생긴 서울내기 여학생이 전학 온 첫 날 교단에 올라가 인사하는 것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졸업할 때까지 그 여학생에게 말 한 마디 못 붙여 본 것이나 이 나이가 되도록 뱅어포를 실컷 구워 먹어 보지 못한 것이나 피장파장인 셈이다.
그날은 그 음식의 이름도 모른 채 장아찌 도시락을 얼른 먹어 치우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공을 차면서도 서문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고 있는 그 친구의 어머니가 이날따라 몹시 부러웠다. 그러나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울 엄마를 생각하니 높은 곳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했다.
초등학교 때는 산수책이 죽을 욕을 봤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산수책을 김치 국물이 흐르는 도시락 옆에 붙여 놓았기 때문에 책만 펴면 '시굼털털'한 냄새가 진동했다. 겨울철엔 난로 위에 켜켜로 쌓아놓은 도시락에서 김치 익는 냄새가 나기만 하면 산수책이 먼저 달려 나가 뜨거운 열기를 참아가며 밑바닥 도시락을 위로 끄집어 올리는 일을 도맡아 해냈다. 그러니까 산수책을 업신여긴 대가는 시험 성적으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점수는 말 안 해도 되겠지만 좌우지간 지금도 산수책에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소풍날, 김밥에 밤과 삭힌 감은 기본
가을 소풍 철이 돌아오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그 때는 김밥에 밤과 삭힌 감은 기본이며 과자와 사이다를 가져가야 겨우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형편을 눈치로 살펴보니 저기압에 먹구름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 해는 가뭄이 심해 어머니는 마른논에 물을 대느라 밤낮없이 골몰하고 계셨다. 그런 판국에 사이다 얘기를 끄집어내다가는 "야, 이놈의 종내기가 뭐라 캐샀노"란 강펀치가 날아 올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소풍날 아침 나는 뒤축이 떨어져 걸리지도 않는 검정 고무신을 질질 끌며 시오리 떨어진 무학산 밑 환성사로 '소풍'이 아닌 '울풍'을 갔다. 도시락을 열어 보니 김밥이 아니라 김치와 무장아찌 그대로였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밥 위에 계란 프라이가 광복절 아침 양철지붕 찌그러진 대문 옆에 태극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울풍 만세!
"저 외진 데로 가/ 혼자 밥 먹는 친구를 보고
일곱 사람이 식판 들고/ 그 쪽으로 몰려가네.
산나리/ 긴 목을 휘어 물끄러미/ 보고 있네."
왁자지껄 친구들의 야외 식탁에서 벗어나 혼자 바위 밑에서 눈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산나리조차 긴 목 휘어 물끄러미 바라보진 않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물기 젖은 볼을 간지러 주었네. (9.8)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