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들 상에 올리는 데 아낄 게 따로 있지요. 추석에는 불황도 비켜갑니다."
2일, 7일이면 장이 서는 27일 영천 5일장. 가을비는 장이 서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빗줄기가 강해져도 장은 부산했다. 이날은 추석 전 마지막 장. 장터로 밀려드는 발걸음이 이상할 것도 없다.
버스정류장에는 한 손에 우산을 받쳐들고 검은 비닐 봉지를 손가락 마디마다 끼워 선 할머니들이 소복하다. 꾸부정한 허리로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은 양이지만 거뜬하다. 비닐 봉지 안에는 돔배기, 가자미, 고추, 대파, 밤이 들었다. 모두 추석 차례상에 쓰일 재료다.
돔배기는 영천장이 자랑하는 제품이다. 상어 고기를 소금으로 2, 3개월 숙성시켜 만든 돔배기는 영천 특산물 대접을 받는다. '쇠고기는 못 올려도 돔배기는 올린다'는 지역 풍습도 한몫한다.
돔배기 가게 밀집 구역은 말도 못붙일 정도로 바빴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겨우 돔배기를 살 수 있다. "18꼬치 해주이소. 1시간 뒤에 올게요." 조명제(69)씨는 "20년 넘게 영천장에서 돔배기를 사왔지만 늘 1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고 했다. 돔배기 상인에게 "추석 대목에 어느 정도 팔리느냐"고 물었더니 "바쁘니까 말시키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영천장에서 거래되는 돔배기는 연간 500여t으로 추정되며 이중 절반 정도가 설·추석에 팔린다.
돔배기만 얘기하면 과일, 채소가 섭섭하다. 한 움큼 얹어 주는 덤과 가격을 흥정하는 것은 예외없는 5일장 풍경이다. 대목 앞이라면 인심은 더 후하다.
'5일장'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공설시장 194개에 장이 서는 날이면 난전 200여개가 가세한다. 대구시내 웬만한 시장과 견줘도 코웃음칠 정도다. 평소 3천~5천명이던 이용객도 추석 대목 앞이면 1만명을 훌쩍 넘는다.
난전 앞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갈팡질팡이다. 뭘 사야 할지 고민이다. 양과 질에 비해 가격이 싸다. 난전들은 대목에 가격을 올려 한탕하는 것보다 박리다매를 노린다. 하루이틀 장사하고 말 게 아니어서다. 단감 2봉지에 3천원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띈다. 봉지당 단감 개수를 세어보니 15개 안팎. 개당 100원인 셈이다.
직접 사본 채소류도 정말 싸다. 25cm 오이 6개 2천원, 깐 도라지 300g 2천500원, 오이고추 400g 2천원. 대형소매점과 비교해 4배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파격 세일'이라는 문구만 없을 뿐 추석 대목 진짜 세일은 5일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추석 대목 영천장에서는 불경기를 느낄 수 없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