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잠시 잠이 깨면 "아, 아직도 숨 쉬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긴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창 밖을 바라본다. 암 말기의 시한부인생. 눈을 떠도, 잠을 자도 홀로 남겨질 여섯살 딸아이(애정)에 대한 걱정뿐이다.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애정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며칠 만에 병원을 찾아온 애정이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이다. 아직은 죽음을 모를 나이지만 코와 팔목 등 온몸에 호스를 꽂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엄마를 보며 뭔가 무서운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하는 것 같다. 이모가 엄마 옆에 가 손을 잡아주라고 떠밀어내 겨우 침대 옆으로 온 애정이는 한마디 말도 없이 가만히 엄마 손만 잡고 있었다.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사랑한다고도 말해주고 싶은데…. 말 한마디를 하기도 쉽지가 않다. 워낙 숨이 약해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다 호흡까지 거칠어 한 단어씩 끊어 말을 하다 보니 애정이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 듣는 눈치다.
애정이는 마흔둘 늦은 나이에 낳은 하나뿐인 자식이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십여년 가까이를 보험설계사, 식당일 등을 전전하며 혼자 살다 40 무렵 두번째 결혼에서 애정이를 가지게 됐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3년 만에 다시 혼자가 됐고, 애정이는 내 성을 따서 '오애정'으로 홀로 키웠다.
애정이는 엄마의 정을 느낄 새가 별로 없었다. 애정이가 네살 무렵이 될 때부터 암과의 투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변비 증상이 워낙 오래 이어져 병원을 찾았다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신께 어떤 고통스러운 수술도, 항암치료도 다 참아낼 테니 살려만 달라고 매달렸다.
이런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려는 듯, 수술을 받고 한동안은 상태가 많이 호전돼 등산을 다닐 정도로 회복되는 듯했다. 애정이도 묵묵히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해 줬다. 내가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아이는 혼자 제 짐을 꾸렸다. "엄마, 나 옆집 아줌마네 가서 몇 밤 자고 오면 돼?"라며 "빨리 치료받고 돌아와"라고 어른처럼 말했던 착한 아이다.
그리고 지난 9월 초 병원을 찾을 때만 해도 이렇게 갑작스레 끝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여느 때와 같이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더니 간과 폐로 전이가 됐으니 입원을 하라고 했고, 하루가 무섭게 상태가 나빠졌다. 입원할 때만 해도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왔는데 이제는 혼자 일어나 앉을 수도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렇다 보니 24시간 간병인이 곁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 하루 간병비만 7만원.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도리가 없다. 병원비만도 수백만원인데 하루하루 갈수록 늘어나는 간병비도 큰 부담이다.
애정이는 아직 옆집 아줌마가 봐 주고 있다. 아직 어린 애정이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모보다는 옆집 아줌마와 또래 친구들이 좋단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마음씨 좋은 이웃들을 만난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싶다.
이제 치료는 손을 놓았다. 더는 가망이 없단다. 그렇다고 생에 대한 의지까지 포기해 버릴 수는 없다. 마지막 숨이 붙어있는 한 끝까지 싸워 버텨야만 한다. 엄마니까, 아직 여섯살인 애정이를 혼자 세상에 남겨둘 수는 없으니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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