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한 오늘? 내일이면 아련할 시간

■그리움 속으로 걸어가다/주영욱 지음/소소리 펴냄

'가끔 살아가는 일이 아득할 때가 있다. 길을 걷다 잠시 한눈판 사이, 동무들은 모두 저만치 가버리고 혼자 남았을 때, 그 낭패감처럼. (중략) 돌아보니 지난 것은 모두 그리운 풍경으로 남는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나 미워했던 사람마저도. 그리운 것은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보고 싶은 것은 끝까지 보고픔으로 남겨두고 싶다. 사물이며 사람 사이의 만남이나 소통은 그 첫 만남과 느낌 그대로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주영욱 산문집 '그리움 속으로 걸어가다'에 묶인 글들은 책 머리말에 실린 위의 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지은이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그렇고 그런 일상에 대해, 가버린 세월에 대해, 헤어진 후 다시 만나지 못한 동무들에 대해, 아쉬움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영욱은 '그렇고 그런' 오늘도 세월 지난 후에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그는 추억을 쌓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과 여름에 우는 매미, 대지와 마음을 적시며 내리는 비에 대해서도 그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특별한 것 없는 일상과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옛일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가꾸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영욱은 젊은 시절을 지나온 중년이고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버지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그의 글들에는 평범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마주쳐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모두 묻어 있다. 교사로서 그는 아이들에게 '천천히'를 강조한다.

'생각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합니다. 남보다 조금 뒤처지면 어떻고 늦으면 또 어떠합니까? 느림이 흉이 돼서는 안 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여유를 갖게 하여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면, 마음과 정신이 열려 호방한 심성, 곧 호연지기가 길러지리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매사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책은 1부 '연분홍 스웨터', 2부 '매화 향기 바람에 날리니', 3부 '그리움 속으로 걸어가다', 4부 '멀리서 보는 숲'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31편의 수필을 묶었다. 표제작 '그리움 속으로 걸어가다'는 본지 2007년 3월 27일 '주말 에세이' 난에 실렸던 글로 아련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박양근 교수(부경대 영어영문학과)는 발문에서 "주영욱의 수필은 시심과 동심이라는 겹꽃을 피우고, 청옥 같은 산문정신으로 결정화된다. 그의 작품 곳곳에는 교육 현장과 향토미가 투영돼 있다"고 평했다.

간결하고 단아한 문장, 수사와 과장을 배제한 글들이 독자를 편안하게 한다. 주영욱의 글들은 열정에 휩쓸려 함부로 내달리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의 절제를 안다. 163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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