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한 말 또 한다!"

친구나 동료들과 대화할 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을 때가 간혹 있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듣게 될 때는 예의상 처음인 듯 듣지만, 세 번째 듣게 되면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왜 사람들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기억 능력을 연구한다.

사실 20세기 후반부터 심리학자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한 심리 현상을 꼽으면 아마 인간의 기억 능력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기억된 정보가 얼마나 유지되는가에 따라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기억의 내용에 따라 의미 기억(예, 과일의 의미), 일상생활의 사건(작년 생일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일화 기억, 운동 기술같이 몸에 기억된 절차 기억(자전거 타는 법) 등으로 기억이 여러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그러한 기억 능력이 뇌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에 대한 기억, 즉 '목적지 기억'에 대한 연구는 간과되어 왔다. 최근 이 목적지 기억에 대한 연구가 보고되어 잠깐 소개해 볼까 한다.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 중 한 집단에는 간단한 사실이 적힌 목록을 제공하고, 컴퓨터 화면으로 유명 인사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그때마다 목록에 있는 한 가지 사실을 그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게 하였다. 그 반대로 나머지 집단에는 화면에 얼굴이 나타날 때마다 목록에 있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그 후 두 집단에게 이야기했던 사실 혹은 들었던 사실을 그때 나타난 얼굴과 함께 기억하게 했다. 그러자 흥미롭게도 이야기한 집단이 들은 집단보다 기억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 또한 첫 번째 실험과 같이 집단을 둘로 구분한 후, 한 집단에는 자신과 관련 없는 사실을 제공하고, 다른 집단에는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에 관한 사실을 유명 인사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게 하였다. 그 결과,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자신에 관한 사실을 담고 있다면 목적지 기억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는 내용에 집중한다. 그 이야기가 자신과 관련될수록 더 많은 집중을 하게 되며, 그 결과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결과가 대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목적지 기억 현상이 나이와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늙어서 그렇다는 핀잔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할매는 한 말 또 한다"며 짜증을 내곤 했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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