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색당인 중 북인 학맥을 이어받은 마지막 선비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 선생의 장례식이 17일 오전 유림장(儒林葬)으로 거행됐다.
이 선생의 장례식은 9일 합천읍 서산리 자택에서 향년 93세로 별세, 달을 넘겨 치르는 유월장(踰月葬)으로 전국 유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장지는 인근 선산.
춘산은 1917년 합천군 가야면 학계(鶴溪) 마을에서 태어났다. 5세때부터 한학에 몰두, 빼어난 자질과 실천궁행으로 전국 유림들의 주목을 받았고 30대 초반부터 후진 양성에 몰두해왔다.
90세까지 향교전교(鄕校典校)와 여러 서원(書院)의 원장(院長)을 역임했고 제1회 성균관(成均館) 한시고선관(漢詩考選官)을 맡은 것을 비롯해 70여 차례에 걸쳐 고시관(考詩官)으로 활동했다.
춘산은 전국의 크고 작은 백일장에서 장원을 수십여차례 했다. 또 수업 문인이 수백여명에 달하고 특히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 가운데는 현직 대학교수들이 많았다. 그동안 저술한 시와 서문, 기문과 상량문, 비문 등을 포함한 작품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는데 그 분량이 17권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춘산은 북인 학맥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처했다.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노론(老論)과 소론(少論) 사색당인 가운데 광해군 시대 집권했던 북인(대북)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자취가 사라져 북인 학맥을 이었다는 선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남인과 노·소론은 조선후기까지 명맥을 이어 지금도 전국 곳곳에 그 학맥을 자처하는 유학자들이 많지만 북인 학맥을 자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춘산은 생전에"남명(南冥) 선생은 충효, 예절, 도덕의 학문을 닦으면서 세상에 나가지 않고 산림에서 청백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선비로서 산림학자(山林學者)였다"며 "내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합천·김도형기자 kdh02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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