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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교의 일본어 원류 산택 51] 춘향전과 충신구라(1)

매년 추석이나 설이면 한국인들은 '춘향전'을 보면서 웃고 울고 즐거워한다. 똑같은 레퍼토리인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기쁨을 자아내고 행복감을 더해준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이런 감정을 '충신구라'에서 찾는데,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그 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춘향전의 제작시기와 거의 비슷한 연대인 1701년 음력 3월 14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300여년 전의 에도시대 이야기다. 도쿠가와 막부시대 5대째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교토(京都)에 있는 천황의 연하 답례자를 맞이하여 치르는 일련의 행사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이다.

쓰나요시 장군은 생모인 게이쇼인(佳昌院)에게 '종1품'의 작위를 주도록 하기 위해 교토 황실의 칙사를 전에 없이 정중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일련의 의식준비를 담당하는 의전장은 '기라'(吉良上野介義央)였다. 오전 10시쯤 의식을 준비하는 기라가 막부의 신하와 복도에서 상의하고 있는데 돌연 배후로부터 '그동안의 유한(遺恨)을 기억하는가?'하면서 달려드는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이가 바로 비극의 주인공 '아사노'로 칙사의 식사 당번역을 맡은 아카호지방 성주였다.

그런데 '기라'라는 인물은 원래 속이 검은자로서 의식 절차를 처음 맡은 '아사노'에게 지도에 대한 사례금을 요구했으나 충분치 않자 여러 가지로 괴롭혔는데 혈기왕성했던 젊은 '아사노'는 이를 참지못해 끝내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단도(短刀)였기 때문에 '기라'의 이마에 조그만 상처를 입혔을 뿐 이런 소동은 주위사람들에 의해 곧 진압되었다.

이 사건을 들은 장군은 격노해서 당장에 할복하도록 하고 성을 몰수하라고 호령한다. 따라서 '아사노'는 그날로 할복하였으나 상대방인 '기라'는 일방적인 피해자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무죄로 인정되었다.

아카호성의 에도 출장소의 가신은 너무 놀라서 이를 급히 '아사노'의 본성인 효고현의 아카호에 알린다. 에도에서 아카호까지 통상 17일 걸리는 600여km의 길을 두 사람의 사자는 빠른 말을 갈아타면서 단 4일 만인 3월 19일 오전 5시쯤에 아카호에 도착한 것이다.

급보에 놀란 아카호의 충신 오오이시와 오오노를 중심으로 한 가신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방안이 나오자 않아 결국 막부의 명령대로 조용하게 성을 양도하기로 하였다. 충신 오오이시는 아카호성의 돈을 가지고 지금으로 말하면 회사 파산선고에 따른 퇴직금을 배포하였는데 이때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 배분 비율을 높게 책정하였다. 사건 한 달 후인 4월 16일, 막부로부터 파견관이 도착하여 19일에는 성의 인계 수속을 끝마쳤는데 성의 구석구석까지 잘 정돈되고 서류도 완벽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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