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김혜신 옮김,『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2006)

먹을 것이 생기면 식구부터 챙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살만 하게 된 한국, 그동안 돌보지 못한 우리 사람들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600만명이 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바로 그들입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어지다'(離散)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입니다. 지역 분쟁이나 세계화 등 외적인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속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내쫓긴 사람들이나 후손들을 말합니다. 고려인, 중국교포, 재일조선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강제 이주한 재일조선인의 처지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국가 일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치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모국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 시기의 반목 때문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살고 있는 땅 일본에서는 이방인으로 취급받고, 모국에서는 국어도 모르는 언어 소수자로 취급받았습니다. 재일조선인 2세들의 경우는 더 아이로니컬한 운명을 가졌습니다. 식민지 피지배자의 후손이면서 구식민지 종주국에서 태어난 탓에 지배자의 국어를 모어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출생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것임에도 식민지 피지배자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갖은 차별과 박해를 받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완전한 디아스포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된 것입니다.

서경식 교수의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2006)을 읽으면 이들 재일조선인의 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50년 넘게 일본에서 살았고,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이지만 국적은 '한국'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창이 지방 선거에 출마하고 지지를 부탁해도 참정권이 없다는 대답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재일조선인에게 지역참정권조차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납세는 일본인들과 똑같이 하는데도 말입니다. 문제는 무관심입니다.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그들의 처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재일동포라 부르지만 그들은 '한국 국적 소지자', '조선적 소지자', '일본 국적 소지자' 세 부류로 나뉩니다. '한국 국적' 소지자는 한국 국민과 거의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러면 '조선적'소지자는 북한의 국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1910년대 이후 조선사람은 야마토(大和)민족과 똑같은 일왕의 신민이 되어 일본 국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내지로 건너왔던 서교수의 조부는 외국인이 아니라 일본 국적 소지자였습니다. 조선사람에 대해 가혹한 차별이 있었지만 국적상 조선사람은 '일본국민'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확대되고 태평양전쟁이 개시된 시기에 대략 70만명 내지 100만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내지의 탄광, 광산, 토목공사 현장, 군수공장 등에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그 결과 패전 무렵에는 적어도 230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 내지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패전 후인 1947년 쇼와(昭和)일왕의 칙령으로 재일조선인은 하루아침에 외국인으로 변했습니다.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는 외국인 등록령이 선포된 것입니다. 문제는 '외국인'으로 등록 수속을 할 때 국적을 신고하고 기입해야 하는데, 한반도에는 아직 조선인들의 독립국가가 성립되지 않았던 상황입니다. 할 수 없이 재일조선인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기입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48년에 남측에서는 '대한민국'과 북측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가 수립을 선언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한창일 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었고,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 상실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습니다. 모든 재일조선인들이 무국적의 난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재일조선인 가운데 외국인 등록상의 국적란에 '조선'을 '한국'으로 고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대부분 고향이 있고 친척과 연고가 있어 한국을 방문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의 국민이라고 자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시 조선은 하나'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무국적 난민입니다. 해외로 나갈 때는 여권 없이 일본이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증'만 가지고 출국하게 되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외교권을 행사해줄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한국인, 코리안 디아스포라입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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