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8일. 어느 때처럼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보다 일찍 저녁식사를 끝낸 수희(가명·16·여·경남 함양군 안의면)는 할머니 일손을 거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 시골집 옆에서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불씨가 수희의 치맛자락에 옮겨붙으며 수희의 다리를 휘감았다. 손으로 치맛자락을 두드려 불을 끄려 애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일론 소재의 치마가 녹으면서 손에까지 엉겨붙어 짙은 화상의 흉터를 남겼다. 살아겠다는 생각에 집 옆 개울가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희는 하반신을 붕대로 둘둘 감은 채 병원에 누워 있었다.
화상 치료를 받은 지 5개월째. 수희는 여전히 따가움과 가려움증으로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화상부위에 흐르던 진물은 가라앉았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다리에 피부를 이식하기 위해 등의 살갗을 다 벗겨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릎 아래부분에는 인공피부를 이식해야 했다. 헐렁한 병원복을 걷어올리니 다리에 난 얼룩덜룩한 흉터가 그날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수희는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식한 피부가 딱딱하게 굳는 것을 방지하고 유연하게 잘 늘어나도록 하기 위해 화상 스탬프 치료와 레이저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것. 재활치료가 끝나면 피부가 굳어져 제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와 다리 관절이 한결 움직이기 수월해질 것이다.
화상치료는 비용과의 싸움이다. 12월에 1차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낸 병원비만도 3천만원이 넘었다. 약값도 만만찮다. 수희가 하루 바르는 화상 연고만도 17가지인데 일주일이면 바닥이 나 매주 4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할머니 박주임(63)씨는 "동네 이웃들에게 몇 백만원씩 돈을 꿔 겨우 병원비를 마련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돈을 꿀 데도 없다"며 눈물을 닦았다.
수희는 아버지 어머니 없이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IMF로 부도를 맞은 뒤 집을 나갔고, 이혼한 어머니는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다. 수희는 남동생(14)과 함께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농사를 짓는 삼촌과 함께 지금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갑작스런 사고에 결국 지난해 10월 기초수급자 지정을 받았다"며 "덕분에 현재는 병실입원비와 식사비는 내지 않고 있지만 화상치료는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비가 엄청나게 불었다"고 했다.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소식이 끊어졌던 수희 아버지가 달려왔지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처지여서 좌절감에 다시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수희는 지난해까지 육상 장거리 선수로 뛰었다. 함양군 대표로 3천m 달리기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뜀박질도 잘하고, 줄넘기도 잘한다"며 "운동에 소질이 있던 아이였는데 다리가 이렇게 되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수희는 당장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학교 못 가는 것이 더 속상한 어린 나이.
수희는 "빵을 너무 먹고 싶다"며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에 밀가루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없는데다 학교 친구들 못 보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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