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식들이 오기 힘들면 우리가 가야지…"고단한 모정

설 명절때 서울로 가는 어르신들

해마다 그렇듯 민족 최대 명절 설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 차량이 꼬리를 물지만, 최근에는 설을 쇠러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 아들집에 설 쇠러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청도 전진현씨.
해마다 그렇듯 민족 최대 명절 설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 차량이 꼬리를 물지만, 최근에는 설을 쇠러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서울 아들집에 설 쇠러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청도 전진현씨.

매년 되풀이 되는 차의 홍수다. 서울로부터 출발하는 길이란 길은 죄다 차로 들어찼다. 도로를 메운 차들은 꾸역꾸역 남으로 남으로 밀고 내려온다. 설을 쇠려고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 행렬들.

그러나 서울로 향하는 차로는 휑하니 뚫렸다. 드문드문 보이는 고속버스는 바람소리를 내며 질주한다. 길게 꼬리를 잇고 밀려 내려오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 북행 고속버스 속에는 남행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남몰래 눈물을 찍어내고 있다. 이른바 역귀성하는 모정(母情).

"바쁜 아들 며느리가 짧은 연휴동안 힘들게 움직이느니 내 한 몸 올라가는 것이 수월하지…." 이미 사나흘 전부터 양손에 보따리를 든 주름이 깊이 팬 노부모들은 기차역으로, 고속버스터미널로부터 서울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설날 집을 떠나는 사람들

"올해로 3년째요. 아들이 서울 있는데 내가 명절마다 올라가지요. 저들 조부모, 아버지 제사를 서울로 모셔갔으니 기제사, 명절제사 때 내가 서울로 가야지요."

설 이틀 전. 청도역서 서울 아들집으로 나서는 전진현(70·여)씨. 전씨는 오전 11시 35분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명색이 설이라 차례 때 입을 한복 챙기랴 아들이 좋아하는 콩잎김치 챙기랴 어둑한 새벽 부산을 떨어야했다. 오전 8시 마을버스 첫차를 타고 면소재지까지 나와 다시 읍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고 11시가 못되어 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는 이미 작은 딸이 예매해뒀다. 아들은 4시간 반 후 서울역에 내리면 차를 몰고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전진현씨가 사는 곳은 청도군 풍각면 월산2리. 고개 마루만 넘어서면 경상남도로 경북의 도경계 산골이다. 마을은 예전 30가구 가까이 살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은 모두 떠나고 여남은 집 늙은이들만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전씨처럼 설을 쇠러 아들네 가는 집은 이 집뿐만이 아니다.

이웃 박순애(78) 할머니의 집 대문은 이미 그제께부터 굳게 걸어 잠겼다. 서울 사는 큰 아들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와서 일찌감치 설 쇠러 서울로 올라갔다. 아들은 서울에서 슈퍼마켓을 하고 있다. 설이 임박해서는 배달이 많고 바빠지기 때문에 일찌감치 모시고 올라간 것.

박 할머니는 아들딸 7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객지로 나갔다. 제사는 서울 큰 아들집에서 모신다. 박 할머니는 설을 쇠고 정월 보름께나 되어야 시골로 내려올 것이다. 서울 큰 딸네, 인천 작은 아들네를 쭉 한 바퀴 돌아온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설 쇠러가면서 올해는 가래떡 한 말밖에 해가지 못했다. 예년에는 두부랑 묵, 강정도 만들어갔는데 금년에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아무것도 장만하지 못했다. 서울로 가는 날도 자기 한 몸 겨우 추슬러 갔다.

그나마 설 쇠러 서울로 아들이 데리고 간 집은 덜하다. 올해 84세인 '금동댁 할머니'는 차를 타지 못해 서울 아들네에도 못가고 혼자서 설을 쇨 요령이다. 마을회관에서 늘 끼니를 잇다시피하는 할머니는 이웃에서 갖다 주는 떡국으로 설치레를 할 판이란다.

월산2리는 예로부터 벽촌이라 논은 드물었다. 산간 비탈밭에 목숨 줄을 걸고 살다보니 보니 누구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넉넉잖았다. 때문에 자기 밥벌이 할 양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대처로 나가 지금은 늙은이들만 남았다.

"스물에 집안 어른들이 짝지어 주는 대로 산골로 시집가서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았지요. 아들 딸들은 고등학교 마치고 모두 일찍이 서울로 부산으로 돈 벌러 나갔어요. 한 푼 두 푼 모아 그래도 아이들 끈은 겨우 다 붙였지요. 막내딸 시집보내고 겨우 삼년 째 바깥양반은 농삿일하다가 경운기 사고로 그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지요."

전진현씨는 10년째 논 다섯마지기, 밭 네마지기 농사지으며 혼자 살고 있다. 봄이 되면 산나물 뜯고 가을이 되면 감 따서 가계에 조금씩 보태 밥은 굶지 않는 처지라고. 전에는 아들이 서울 영등포에서 참기름 장사를 해서 제법 돈을 벌어 생활비를 보내줬는데, 2년 전 다른 사업을 크게 벌이다가 어려워져 기댈 형편이 못된다.

◆텅 빈 서울서 설이 무슨 재미…

"어려우나마 아들은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자고 하지요. 그렇지만 서울 가봤자 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서 가만히 앉아 뭣하겠어요. 그래도 시골에서는 매일 눈만 뜨면 보는 이웃이 있고 종일 무엇을 해도 할 일거리가 있으니 지겹지는 않지요. 서울서는 하루가 지겨워 못 살아요."

때문에 설 쇠러 서울 아들네 집으로 가는 전진현씨의 행장은 간편하다. 여행용 손가방 하나에 조그만 보따리 하나. 가방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넌즈시 물으니, "뭐 한복 한 벌 하고 속옷가지, 세면도구고 그렇지 뭐"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얘긴 즉,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사나 명절 때 큼지막한 보퉁이를 싸들고 다녔는데 아들이 힘들다고 못하게 해서 요즘은 몸만 다닌다고. 대신 서울에서 산 자반이나 돔배기는 영 맛이 없다며 시골서 소금간한 것을 사 보내라고 해서 이미 나흘 전에 택배로 부쳤다. 그 편에 묵나물이며 떡쌀이며 함께 보냈다.

"아들이 팥 이파리 무친 것을 좋아해서 그걸 조금 가져가요. 그건 일찍 삶아놓으면 무르니까 내가 들고가지요. 그리고 지난번 제수 보낼 때 손녀가 좋아하는 감말랭이를 보내려다가 무게가 넘는다고 해서 못 부치고 조금 가져가고요. 뭐 요새 시골서 한 음식을 젊은 사람들이 잘 먹어야지요 뭐. 며느리는 무말랭이나 시래기 같은 걸 갖다 주면 오히려 귀찮아하는 눈치더만요."

전씨는 도회지 며느리와 아귀가 잘 맞아보이지는 않는다. 한솥밥 먹은 날을 다 합쳐봐야 한 달도 안 된다니까 그럴 것이란 짐작이 간다. 고부간이 살갑든 말든, 영감만 살아 있었어도 설 쇠러 거꾸로 다니지는 않을 텐데…. 마을 초입에 있는 5촌 조카네는 내일 아들 며느리가 오면 얼마나 시끌벅적할까 싶다. 전씨는 이럴 때면, 딱히 집어 뭐랄 수는 없지만, 괜히 서럽다.

이번도 아들집에서 두 밤을 자고 딸네집 들렀다가 초사흘날은 내려올 참이다. 내려오자마자 5촌 조카가 설치해둔 비닐하우스에 곁다리로 붙어 고추씨를 좀 부어야 한다. 그만큼 설 쇠는 것보다 농사에 더 신경이 가는 눈치다.

오전 11시 30분. 역 구내 안내방송에서는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도착한다고 왕왕 울린다. 학생들 세 명이 재잘대며 개찰구를 빠져나가고 역 구내는 한산하다. 가방과 보따리를 챙겨들고 플랫폼을 나서는 전씨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술만 먹으면 고래고함을 지르던 '이녁'이라도 있으면 우리 집도 남들 같이 아들 며느리 설 쇠러 내려와서 북적거릴 텐데. 이녁이 없이 혼자 서울로 떠나는 사람에게는 설도 설 같잖고 서러움만 더하다.

내일 섣달 그믐날 저녁 산골 마을. 대문이 닫히고 불 꺼진 집들 고샅길에는 찬바람만 스산하게 몰려다닐 터이다. 고단하게 역귀성하신 모정들, 텅 빈 서울바닥에서나마 과세 잘 하시길….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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