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종시 얘기만 나오면 맥풀려…친이-친박 집안싸움 그만"

15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 설 명절 마지막 연휴를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5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 설 명절 마지막 연휴를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경북 설 민심은 회복 기약이 없는 경기침체와 세종시 문제로 흉흉했다.

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친지들은 반가운 마음도 잠시, 고향 걱정이 앞섰다.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한목소리로 "제발 이젠 그만 싸우고, 경제를 살려라", "세종시는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빨리 합의하라"는 주문을 쏟아냈다.

◆설 차례상은 세종시 토론장

설 연휴 기간 대구경북에 함께 모인 가족, 친지들의 화두는 단연 세종시였다. "세종시 얘기만 튀어나오면 맥이 탁 풀린다"는 중소기업인 이한태(53)씨는 서울에서 대구로 귀향한 동생(42·은행원) 부부에게 세종시 걱정부터 털어놨다.

이씨는 "세종시가 수도권에 인접한 강점에다 분양가가 엄청나게 싼데 대구경북에 들어 올 기업이 어디 있겠냐"며 "정부가 수도권 중심주의에 젖어 피폐해진 지방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무원 이상기(47)씨는 "오랜만에 귀향한 가족들은 세종시와 대구경북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며 "세종시 직격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이 대구경북이다. 정부가 지방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지만 신서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국가산업단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의 어두운 미래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에서 건축 공사장 감독을 맡고 있는 김호경(34)씨는 "대구 가족이나 친구들 걱정이 너무 컸다. 그러나 솔직히 수도권이나 서울 사람들은 세종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며 "정부가 지방 여론을 얼마나 수용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경기는 기지개를 켠다는데….

설을 맞은 대구경북 서민들의 밑바닥 민심은 경기 회복을 낙관하는 정부 전망과 크게 달랐다. 정부가 세정시 수정안에 골몰하는 사이 지역 경제 전망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아우성이 명절의 넉넉함을 덮어버렸다.

조그만 자동차 부품 업체에 다니는 신영모(33)씨. 그나마 일 할 곳이 있다는 건 다행스럽지만 명절에도 부모님과 조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신씨는 "매일 밤늦게 퇴근하지만 수당, 보너스가 오히려 줄어 통장 잔고가 바닥"이라며 "설을 쇠러 부모님 댁에 모인 친척들도 하나같이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전했다.

전통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박명화(57·여)씨 역시 우울한 설을 보냈다. 명절 대목에도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탓이다. 박씨는 "서민들 지갑이 가벼워지니 상인들도 덩달아 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걱정이 앞선 세종시 수정

경주 시민과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귀향객들은 세종시 문제를 두고 벌어진 MB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의 불협화음에 대해 걱정했다. 이영달(53·서울)씨는 "10년 만에 우리 지역과 연고가 있는 정권이 출범했는데 집안끼리 싸움을 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며 "한발씩 양보하는 미덕이 아쉽다"고 말했다.

의성에서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고향을 찾은 출향인과 지역민들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대구에 사는 김형석(57)씨는 "세종시 수정안이 지방선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고, 충청권에 사는 출향인들은 "세종시 수정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구미 형곡동에서 차례를 지낸 김형준(49·대구)씨는 "세종시 수정 등으로 지역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사업 비중 축소마저 예상돼 지방의 구직난은 갈수록 심각해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안동을 찾은 박오환(40)씨는 "세종시 수정으로 지방이 갈수록 소외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고, 대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김성택(46)씨는 "세종시 문제로 정부와 여당이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혁신도시가 조성되는 김천에서는 혁신도시의 원활한 추진 여부를 두고 반응이 엇갈렸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종민(52)씨는 "오히려 김천혁신도시가 세종시로 인해 상대적 혜택을 더 입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대전에서 건설업을 하는 김동율(40)씨는 "정부가 세종시로 인해 지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약속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얘기했다.

◇지방선거에서 인물 잘 뽑아야

청도지역을 찾은 귀향객들과 주민들은 지방선거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다시는 돈 선거가 고개를 들지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귀향객 김중곤(55·서울)씨는 "이 지역에서 돈 선거와 관련된 불미스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다시는 회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쌀 주산지인 의성에서도 주민들의 설 화두는 지방선거였다. 이병훈(45) 의성 의로운쌀 작목회장은 "이번 설 민심은 지방선거와 쌀 문제가 주류를 이뤘다"며 "특히 군수·도의원·군의원 출마 예상자에 대한 인물 평가가 적잖았다"고 얘기했다. 성주에서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상 후보자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예상 외로 많아 과열을 우려했다.

◇자녀 취업 등 먹고사는 문제도 이슈

고향은 찾은 귀향객들은 취업난 등 경기침체에 대해서도 아우성을 터뜨렸다. 이달 말 대학을 졸업하는 자녀를 둔 박성호(53·가명·포항)씨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 아들도 조만간 그 대열에 합류할까 걱정"이라며 "세종시니 지방선거도 중요하지만 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의 취업문제"라고 꼬집었다.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김민수(27·포항)씨는 "조만간 인턴도 끝나가는데 아직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안하다"며 "집안 어른들이 빨리 좋은데 취직해라고 덕담을 주셨는데 마음이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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