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스토리텔링은 지하자원이 아니다

요즘 문화산업계의 화두는 단연 '스토리텔링'이다. 적용 범위나 사용빈도 면에서 여태껏 'OSMU'(One Source-Multi Use)가 누려온 독보적 지위를 이미 넘어선 듯하다. 이젠 어떤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해도 '스토리텔링이 좋았다'고 하고 문화산업의 미래도 스토리텔링의 잣대로 가늠한다. 이 뿐만 아니다. 때론 사람의 호칭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의 거장 피터 잭슨! 한국의 피터 잭슨은?"이라는 한 포털사이트의 설문 문항처럼, '프로도 경제'의 주인공 피터 잭슨은 뉴질랜드에서는 기사의 작위를 받아 경(卿)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스토리텔링의 거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설문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박찬욱 감독에게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스토리텔링의 거장'이라는 새로운 칭호가 느닷없이 따라 붙었다.

그런데, 이토록 '스토리텔링'의 지위가 포괄적 최상위 개념으로 격상된 배경에는 문화산업 관련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들이 있다. '서울 스토리천국'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한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의 각 지자체들이 스토리텔링 관련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고, '스토리텔링 개발', '스토리 발굴' 등의 뉴스는 우리 지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게다가 문화산업 분야에서 주로 통용되는 'OSMU'와 달리 '스토리텔링'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짐없이 등장한다.

보고 있노라면 스토리텔링은 우리 지역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그것도 이제야 막 발견된 광맥(鑛脈) 같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뉴스가 풍성해 질수록 더 그렇다. 대부분이 광고기법, 디자인 전략, 시나리오작법, 홍보 ' 마케팅 기법 등에 나와 있고 이미 활용되고 있는 내용들인지라, 스토리텔링이 자원인지, 기술인지, 상품인지, 아니면 만능 솔루션(solution)인지 헷갈린다.

사실 사람이 사는 곳에 언제나 스토리는 있었고, 그것들은 그림으로, 문자로, 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다만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스토리의 생산과 유통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산업'의 관련 정책과 전개는 반드시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고려와 디지털 매체의 속성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거장(?) 제임스 캐머런은 영화 '아바타'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캐릭터까지 완성해 놓고도 기술적 한계에 막혀 10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가끔씩 '스토리텔링 산업'에서 '스토리(What)'보다 '텔링(How)'에 방점(傍點)이 찍히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 산업의 동력은 '우리 스토리'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마인드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스토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데서 세상을 움직이는 '스토리의 살아있는 힘'이 나온다.

파란만장한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우리에게도 스토리는 충분히 많다. 더구나 선조들이 물려준 우리의 이야기들은 '그림형제 동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스토리 원형에서 흔히 보이는 비정함, 잔혹함 따위의 불순물이 거의 없는 원형 그대로의 보석에 가깝다.

스토리텔링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우리의 이야기'들이 조형물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먼저 살아 있어야 한다. '활 잘 쏘는 사람' 하면 '거타지'(居陀知'9세기경 신라의 궁사)가 아니라 '로빈 후드'를 떠올리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서양의 이야기로만 여기면서 우리의 '이야기 잔치'에 손님이 찾아오길 기대한다는 건 '난센스'에 가깝다.

우리가 해외의 스토리텔링 산업 사례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그들이 어떤 시설을 꾸며 놓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또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이다. 허름한 골목에도, 작은 개울가에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스토리는 깃들어 있다. 마음으로 봐야 보이고 사랑해야 들리고, 감동을 함께해야 살아 움직인다.

스토리텔링은 '감동을 키워내는 산업' 이다. 지하자원처럼 개발'발굴하는 산업이 아니다.

권은태 시나리오 작가'마루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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