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호암 동상 '巨富 스토리' 입힌다

"만지면 부자된다" 벌써 입소문, 경남서도 찾아와

3일 오후 3시쯤 대구오페라하우스 야외광장에 세워진 호암 이병철 선생의 동상 앞에 허리가 구부정한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키 작은 할머니는 연방 손을 뻗어 호암을 만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발에도 손이 닿지 않았다.

'호암 선생의 동상을 왜 만지려고 안간힘을 쓸까? 호암과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다가가서 "왜 그러시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이병철 하면 우리나라 최고 갑부잖아. '돈병철'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재산을 많이 모았지"라고 했다. 할머니는 이날 아침을 먹자마자 집이 있는 경남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대구에 이병철 동상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어. 이병철 동상이라도 만지면 부(富)의 기(氣)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찾았지."

#미국 하버드대 교정에 있는 학교 설립자인 존 하버드상 앞은 매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관광객들이 이 동상을 찾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동상의 왼쪽 구두를 한번 만지기 위해서다. '구두를 만지면 언젠가는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이 자신 혹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동상의 왼쪽 구두는 많은 사람의 손길을 타면서 반질반질 빛나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대구시가 지난달 세워진 호암 이병철 선생의 동상에 '부자(富者) 스토리'를 입혀 미국 '하버드상'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성 그룹의 발원지가 대구인 점을 이용해 지역에 흩어진 삼성의 흔적을 관광자원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에 따르면 지역엔 옛 삼성상회 터를 비롯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생가, 제일모직 등 삼성의 옛 흔적들이 많다. 특히 호암 선생 동상의 경우 입상(立像·서 있는 동상)은 서울 신라호텔 정원에 있는 동상과 지난달 대구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세워진 동상뿐인데, 신라호텔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는 한계로 대구의 동상이 관광명소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김상훈 시 경제통상국장은 "해외에 나가면 괜찮은 관광명소엔 반드시 사람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스토리가 하나씩은 있다"며 "호암 선생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보통 '거부'(巨富)라는 이미지인 만큼 호암 동상에 적합한 '부자 스토리'를 담아 관광객들의 눈과 귀를 잡을 계획"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또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만큼 대구가 삼성의 태동지라는 사실을 해외에 적극 홍보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도 이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는 또 내년 2월쯤 옛 삼성상회 터에 완공될 삼성기념공간과 이건희 회장 생가, 호암로(대구오페라하우스~홈플러스), 호암 동상, 구 제일모직 공장부지 등을 잇는 '삼성의 흔적'이라는 주제의 관광상품을 개발, 대구시티투어 코스에 연계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업 삼성의 흔적들은 대구가 자랑할 수 있는 보물인 만큼 이들을 잘 정비하고 꾸민 뒤 적극 홍보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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