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개혁

1987년 6월 항쟁으로 일궈낸 민주화는 사회 전역에 변화를 가져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인 대통령을 국민 스스로 선택함에 따라 저잣거리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불경한 말을 했다고 검은 지프차에 실려가는 일이 사라졌다. 총칼 찬 군인이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제복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됐다. 당연히 인권은 크게 신장됐다. 노동조합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됐고 대중의 위에 군림하던 권력은 대중 속으로 내려왔다. 변화의 양상을 따지면 6월항쟁은 우리 역사상 손꼽히는 개혁 성공 사례라 할 만하다.

민주화 항쟁의 성공은 국민의 지지와 힘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쌓여진 국민 대다수의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진 덕이었다. 역사는 개혁의 연속이다. 그러나 성공한 개혁은 드물고 실패한 개혁으로 흐지부지된 예가 많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탓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창한 구호와 함께 개혁이 외쳐졌지만 용두사미로 끝나 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마음과 동떨어진 남의 나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성공한 개혁은 국민의 지지와 개혁 대상에 대한 설득에서 출발한다. 대신 과거에 대한 적개심과 분풀이식 개혁은 출발부터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업적에 급급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얻기 위한 욕심은 애당초 성공과는 거리가 멀게 만든다. 새롭게 변화한다는 점에서 개혁이란 말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대중의 힘을 얻지 못한 부실한 추진은 역작용만 불러온다.

한나라당의 사법 개혁안을 두고 대법원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사법부를 배제한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최소한의 예의마저 잃은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나라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방법원의 일부 판결로 비롯된 사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 사법부가 여당에 맞선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지금 정권이 코드가 맞지 않다는 시각도 있는 차라 이래저래 추이가 관심을 끈다.

개혁은 어렵다. 그렇다고 개혁이 쓸데없는 일만은 아니다. 성패를 떠나 개혁은 역사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실패한 개혁은 반면교사로서 후세에 교훈을 준다. 그러나 성공한 개혁은 먼저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변화가 선행조건이다. 사법부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권은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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