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11시 대구시 동구 파계사 인근에서 50대 여성을 치고 사체 유기 후 뺑소니' 거짓말탐지기 검사관은 뺑소니범의 거짓말을 입증할 수 있을까. 성폭행살해 피의자 김길태 사건으로 시끄럽던 22일 오후 거짓말탐지기 체험을 위해 대구경찰청 과학수사팀을 찾았다. 기자는 거짓말탐지기 체험을 위해 사체를 유기한 후 뺑소니 친 용의자 역할을 맡았다.
범죄심리실이라 적힌 방 안은 크게 3곳으로 구분됐다. 들어서자마자 둥근 원탁에서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가구가 배치돼 있었고, 오른쪽 방은 최면 및 몽타주 제작실, 안쪽 방은 거짓말탐지실이었다.
이곳 담당자인 거짓말탐지기 검사관 노주형(38) 경사는 연간 250여건의 거짓말탐지 업무를 7년째 맡고 있다고 했다. 범죄심리실에 들어서자마자 검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전에 성장한 곳, 병력, 유전병, 약품복용 여부 등 38가지 사항을 서면으로 묻는 '피검사자 자력표'를 작성해야 했다. 사건과 관련된 핵심적인 질문부터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여가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느냐' 등 검사관의 질문에는 경계가 없었다. 40여분 동안 이런 저런 질문과 답이 오가는 동안 검사관은 지속적으로 메모를 했다. 이윽고 들어선 거짓말탐지실.
배와 가슴에 호흡 변화를 측정하는 벨트를 감았다. 혈압측정기처럼 생긴 작은 벨트가 오른쪽 팔에 감겼다. 심장 박동 감지용이다. 왼손 검지와 약지에는 미세한 피부의 떨림을 측정하는 센서가 붙었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CCTV가 설치돼 있다.
검사관은 메모를 바탕으로 천천히 질문했다. 그래프 용지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만 15㎡ 남짓한 방안에 울렸다. 질문 수는 10여 가지로 많지 않았다. '파계사 인근에서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까'라는 단도직입적 질문도 있었지만 '이름이 뭡니까'라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질문도 있었다. 기자가 계속 부인하자 '뺑소니 사실을 숨기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것도 한번에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이 순서만 바뀌면서 반복됐다. 10가지 남짓한 질문을 3번 반복하고 나서야 거짓말탐지검사는 끝났다.
범죄심리실에 들어선 뒤 2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후련한 표정으로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검사관은 "원래는 담당 형사에게 진실, 거짓, 판단불가의 결과로 보여주게 된다"며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을 들어보니 다소 엉뚱한 질문이라 여겼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거짓말탐지의 원리는 평상심에 비해 감정의 변화가 생겨 생리적 변동이 일어나는 것을 그래프로 보는 것이었다.
호흡, 땀 분비량, 맥박 등이 그래프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 평이한 질문에서 나타난 그래프 모양은 감정 기복의 기준이 됐다.
노주형 검사관은 "정신과 약물을 투여했거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판단되면 거짓말탐지검사를 할 수 없다"며 "특히 거짓말탐지기로 억울한 사람이 생겨선 안 되기 때문에 거짓말탐지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묻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검사 역시 대화를 통한 수사였다. 거짓말탐지실에 들어가기 전 작성하고 정리한 질문들이 거짓말과 진실 사이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였기 때문이다. 노 검사관은 "거짓말탐지기는 도구일 뿐 용의자와 눈빛을 맞추며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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