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정화조 청소작업

"아이고!…코가 썩겠네" 몇 초도 못 버티고 헛구역질

달서천 하수처리장에 도착하면 무게를 잰 뒤 차량의 호스를 처리장 파이프에 연결해 탱크를 비운다.
달서천 하수처리장에 도착하면 무게를 잰 뒤 차량의 호스를 처리장 파이프에 연결해 탱크를 비운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작업 차량 뒤에 있는 호스 작동 밸브를 열고 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작업 차량 뒤에 있는 호스 작동 밸브를 열고 있다.
정화조 뚜껑을 제거한 뒤, 큰 화분처럼 생긴 통을 갈퀴로 들어올리고 있다.
정화조 뚜껑을 제거한 뒤, 큰 화분처럼 생긴 통을 갈퀴로 들어올리고 있다.
기자가 체험한 ㈜북구정화조 작업차량.
기자가 체험한 ㈜북구정화조 작업차량.

이번 주는 '내 무덤을 내가 팠다.'

'기자와 함께' 코너가 만들어진 뒤 근엄한(?) 선배들에게 여러 차례 '똥푸기 체험'을 권유하며 한번 멋지게 망가져 줄 것을 설득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선배들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가급적 자신의 이미지가 덜 망가지는 체험을 찾으려 했다. 내 순서가 되자 모든 선배들이 "말 꺼낸 사람이 직접 하라"며 반격했다. 꼭 하라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미룰까 하다가 '그래! 한번은 해볼 체험이라면 내가 가야지'라고 체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섭외가 되자 걱정은 기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체험이 끝난 뒤 냄새가 덜 빠진 상태로 회사 편집국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류가 주위에서 느껴졌다.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 팀장이 한마디 던졌다. "권 기자, 체험 끝나고 푹 쉰 뒤 회사에 들어와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31일 오전 7시 30분. 북대구 전화국 인근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똥차'가 금세 눈에 띄었다. '아! 오늘 저 차를 타는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북구 정화조 이일협 대표이사가 작업 바지와 모자, 노란 장갑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고생 좀 하시고, 궁금한 부분은 돌아와서 더 얘기합시다."

◆세상사는 돌고 돈다

작업 차량은 북구 대현동 한 단독주택에 도착했다. 첫 작업을 할 집이었다. 권종균(54) 기사가 망치와 지렛대, 갈퀴를 꺼냈다. '어! 저건 왜 필요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가서 정화조 뚜껑을 보니 이해가 됐다. 냄새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화조 뚜껑 주변에 시멘트를 얇게 발라 놓았던 것. 권 기사는 탕탕 망치로 두드려 시멘트를 깨고 지렛대로 정화조 뚜껑을 들어올렸다. 순간 인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고! 구린내야! 코가 썩겠네." 몇 초도 못 버티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 헛구역질을 했다.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최악으로 찡그려졌다. 지켜보던 그집 할머니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다 사람이 먹고 사느라 생기는 배설물이잖아요. 일 년에 한번 이렇게 와서 깨끗하게 비워 주니 우리 식구들 모두 맘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잖아요."

뜨끔했다. 힘든 일을 하겠다고 자청해놓고 얼마 견디지도 못한 채 약한 모습을 보인 게 너무 부끄러웠다. 배설은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행위. 생명 활동을 위해 여러 장기를 거치며 담고 있던 영양분을 고스란히 제공한 음식물들의 마지막이 배설물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권 기사는 "20년 동안 이 일에 몸담아 왔지만 인분이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며 "사람들이 활동하면서 생긴 배설물은 하수처리장에서 슬러지 형태로 걸러지고, 정화된 물은 금호강으로 내보내니 결국 돌고 도는 게 아니냐"라고 했다. 그렇다. 배설과 처리도 생산과 섭취와 다름없는 자연의 순환과정 가운데 하나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거름을 만드는 데 인분을 쓰고 있지 않은가. 직업적으로 접근해 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힘든 만큼 보람

꾹 참고 본격 작업을 시작했다. 권 기사는 갈퀴를 이용해 정화조 뚜껑 아래에 있는 큰 화분처럼 생긴 통을 밖으로 들어냈다. 작업 차량에 있는 호스를 끌어와 정화조에 넣었다. 위에 떠 있는 인분부터 빨아들인 뒤 점차 호스를 깊숙이 밀어넣었다. 중간중간 유입 흐름이 좋지 않아 호스가 요동했다. 뭉쳐진 덩어리 때문이었다. 호스 끝을 이용해 덩어리를 분해시키고 빨아들이기를 몇 차례. 10여분이 지나자 1t이 넘는 정화조가 깨끗하게 비워졌다. 처리 비용은 2만2천원. 작업을 끝내고 기자가 권 기사를 대신해 집주인에게 영수증을 주니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잠시의 고생으로 이집 가족들이 일 년 동안은 정화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자 보람이 느껴졌다.

두 번째 역시 경북대 정문 근처 오래된 주택이었다. 그런데 난국이었다. 길이 좁고 주차된 차량이 많아 작업 차량을 대기가 만만찮았다. 충분히 비켜갈 만큼 공간을 줬는데도 지나는 차들은 경적음을 울려댔다. 결국 작업할 곳에 가장 가깝게 주차된 차량 주인에게 전화를 해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집에서 거리가 있어 호스가 짧았다. 10m짜리 호스를 하나 더 가져와 25m짜리 호스에 연결한 뒤에야 정화조 안까지 닿을 수 있었다.

이집은 정화조 뚜껑에 시멘트 처리를 하지 않아 곧바로 지렛대로 뚜껑을 열고 호스를 넣었다. 이번에는 냄새가 생각보다 덜했다. 사람의 감각 가운데 후각이 가장 빨리 둔감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작업도 조금 익숙해졌다. 호스를 이리저리 흔들며 10여분 작업하니 1.4t자리 정화조가 깨끗해졌다.

◆채우고 비우기 하루 4, 5차례

한 집을 더 하고 나니 작업 차량의 탱크가 거의 채워졌다. 한 집 정도는 더 할 수 있었지만 권 기사는 힘들어하는 기자를 보며 차량을 서대구IC 인근의 달서천 하수처리장으로 향했다. 예전에 대구시에서 운영할 때는 2인1조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하루 작업량이 많은 때는 4, 5번 정도 하수처리장을 왔다갔다 한다. 처리량으로 따지면 20t 정도의 양이다. 상당히 고된 일인데도 그는 차량을 운전하며 연방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쨌든 내 직업이잖아요. 이 사회에서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요.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애들 대학 공부도 다 시켰으니 고맙죠."

하수처리장 입구에 들어서니 차량 탱크에 담긴 인분량이 자동 계측됐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차량의 큰 호스를 처리장 파이프에 연결하자 5분도 되지 않아 탱크가 비었다. 처리장 파이프 안으로 들어간 인분은 슬러지 형태로 걸러진 뒤, 다시 정화작업을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간다.

오전 11시쯤 처리장을 빠져나오며 "저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업이 빨리 마무리됐네요"라고 하자 권 기사는 빙긋 웃었다. 기자의 체험은 끝났지만 그로서는 하루 서너 번의 일 중 한 번을 끝낸 셈이었다. 그는 기자를 ㈜북구 정화조 사무실에 데려다 준 뒤 다시 차에 올랐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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