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전통음식의 고장이다. '안동식'(安東食)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의 토속적 특성이 독특하다. 경주지방이 궁중음식형이거나 고급 약선음식인 것과는 달리 서민적이거나 반가음식이라 해도 음식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특이하다. 무를 고춧가루물에 삭혀 낸 안동식혜가 그렇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 헛제삿밥이 유명하고, 바다도 없는데 안동간고등어가 특산품인 점도 그렇다. 또한 음식디미방과 수운잡방, 온주법 등 가히 '식경'이라 일컫는 고조리서가 전승되고 있는 점도 예부터 전통음식 조리법과 함께 '접빈객'을 중시한 곳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요즘도 경북도내에서 한정식이 가장 발달한 곳은 바로 안동이다. 자신있게 음식 자랑을 하는 곳만 10여 군데나 된다. 한식세계화 물결 속에서 안동식(安東式)을 고집하면서도 전국화·세계화에 맞춰 퓨전화를 이뤄 가는 안동 한정식은 프랜차이즈 등 상당한 산업적 가치가 내포돼 있다.
◆안동식 한정식의 살아 있는 역사 '청록'
"손님들이 잘 먹었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고 음식값을 내고 가시니 좋은 재료를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지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좋아하다 보니 더 좋은 음식을 자꾸 궁리하게 된다는 청록한정식(안동 정하동 312-2) 대표 정미옥(56·여)씨는 올해로 주방 경험 40년인 안동 한정식의 살아있는 역사다. 친정어머니가 운영하던 한식당에서 한식을 배우기 시작해 직접 전문 한정식집을 운영한 지도 18년이나 되는 조리 베테랑이다. 주방에서 일하느라 손님방에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대표라기보다 주방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세계음식박람회에 빠짐없이 참관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주변에서 다 알아준다. 한식경연대회에 안동시 대표로 출전하기도 한 정씨는 음식 만들기가 일이자 취미다. 안동지방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수운잡방 등에서 전통음식 유형을 찾아내 재현하고 현대인들의 식성에 맞게 퓨전화하는 정씨의 솜씨에 대해 미식가들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상차림이라고 평가한다.
"전통만 고집하거나 자만하면 금방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요. 음식은 내가 하지만 맛은 손님이 보니까 정성을 다해야 돼요." 음식디미방에서 배운 가지두텁전을 부치던 정씨는 며느리 김재희(39)씨에게 전 부치는 요령을 가르쳐 준다. 올해로 주방일이 10년째인 며느리는 시집오자마자 주방일을 거들고 나섰으나 아직도 시어머니 눈에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밀가루를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하고 가지를 얇게 썰어 번철에 붙여 내는 가지두텁전은 정씨의 손에 의해 재현됐다. 무나 애호박을 같은 방식으로 구워내기도 하며 매실액을 첨가한 전통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음식 스토리텔러, 손님들에게 인기
이집에서 10여년째 음식 스토리텔러로 활동 중인 이명숙(43·여)씨와 서정애(42·여)씨는 손님들에게 인기다. "요거는 안동 특산물인 마(산약)로 만들었어요. 한번 먹어보세요. 참 맛있어요. 위장에도 좋고요." "요건 무청인데 장아찌로 담갔어요. 무청장아찌는 우리집 특미인데, 비법은 군사비밀이에요. 아삭아삭한 게 아주 깔끔해요. 비만에 아무 문제가 없어 배나오신 손님이 많이 드셔도 괜찮아요."
가족 같이 끝없는 친절에 처음 온 손님들은 놀라워한다. 정씨는 알아서 음식 스토리를 배우고, 손님들에게 안동음식을 척척 설명해준다.
이집에선 마치 수라간처럼 예약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마련해 놓는다. 독실한 불교신자라 담백한 사찰음식도 한정식에 응용해 낸다. 정미옥씨는 궁중요리뿐만 아니라 고문서를 통해서도 한식을 배우고, 어쩌다 들른 작은 식당에서도 별난 음식을 접하면 그 자리에서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식재 발굴과 새 음식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는 꾸준히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충고한다. 마와 안동간고등어, 시래기, 콩가루 등 안동 토속음식 재료를 갈거나 부쳐내거나 굽고 삶아서 독특한 스타일의 안동식을 개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계절별 제철음식 수십 가지 매뉴얼
주방에서 하는 일은 정씨가 도맡다시피 한다. 감자떡, 단호박찜에다 무침 종류만 해도 가오리, 굴, 물가자미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표고와 우엉, 소 허파, 배추 등 부쳐 내는 전 종류도 15가지나 된다. 고구마와 풋고추, 새우, 인삼 등 기름에 튀기는 음식도 여러 가지이고 육회와 수육, 탕수육, 채소 샐러드, 구절판 등 다양한 음식이 줄을 잇는다. 마, 호두, 밤, 곶감 등 전식과 후식거리에다 장어와 연어 구이, 복어 수육, 문어, 가오리찜과 찌개류, 명태구이, 더덕구이 등 주방이 마치 음식조리 책자를 보는 듯하다.
정씨가 만들어 내는 한식류는 대중성 높은 전통 서민음식이 대부분이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좋은 재료를 꼽던 40년 한식조리사는 굽고 지져 내고 싶은 욕구가 끝이 없다. 신이 나면 떡갈비, 신선로 오향장육, 취나물밥초, 조란, 오이선 파산적 등 전문 궁중요리도 상에 올린다. 평범한 갈치 구이나 안동간고등어 구이도 손님들이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정성과 솜씨를 다한다. 안동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줏거리도 일품이다. 소 허파를 이용해 지져낸 전은 부드럽고 깊은 맛이 우러나 첫 번째로 꼽는다. 떡갈비와 파산적도 독한 안동소주 맛을 엷게 해 준다.
정씨는 우리 한식은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음식공부를 한다. 전통의 맛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대에 걸맞은 음식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크푸드,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에게 새롭게 우리 맛을 선보이고 한식에 관심을 갖게 만들기 위해서도 열심히 퓨전한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집 한정식 가격은 보통 3만원부터 5만원. 7만원과 10만원 상은 주문에 따라 준비한다. 054)858-2698.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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