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잔잔한 감동 '웰컴'

간혹 '빨리 감기'를 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슨한 영화들이 그렇다. 그런데 영화보다 나 자신에게 이유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 속 호흡이 빠르다 보니 영화 속 여유로움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빨리감기'를 하고 싶었지만, 찬찬히 보니 감동적인 작품이 몇 있다. 프랑스 영화 '웰컴'과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라는 작품이 그랬다. '웰컴'(2009년)은 프랑스에 온 불법체류자 소년이 사랑을 찾아 35㎞가 넘는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려고 하는 영화다.

17세 쿠르드인 소년 비랄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영국으로 이민가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영국행을 결심한다. 이라크에서 3개월 동안 4천㎞를 걸어 프랑스에 도착했지만 밀항 도중 이민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추방당한다. 더 이상 영국으로 갈 수 없는 위기에 놓인 비랄은 수영으로 도버해협을 건너기로 결심하고 수영을 배우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몬을 만난다.

시몬은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였으나 지금은 동네 작은 수영장에서 강사를 하고 있으며 아내와도 별거 중인 상태다. 세상에 대해 심드렁했던 그의 일상에 비랄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새로운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길 하나 건너서 떠난 사랑을 잡지 못하는 그가 3개월간 걸어서, 다시 35㎞를 헤엄쳐 차가운 바다를 건너려는 아이를 통해 나약한 자신을 체감한다. '웰컴'은 환영받지 못하는 두 남자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다.

또 한 편은 역시 프랑스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08년)라는 작품이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떠오른 필립 클로델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터미널에 슬픈 표정의 중년 여성이 담배를 깊게 빨고 있다. 그녀는 15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출소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서 떨어져 지낸 그녀는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해나가며 조금씩 세상에 대해 문을 열어간다. 자식을 죽인 엄마의 비정함에 모두 그녀에게 등을 돌린 세상. 그러나 그녀는 15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이 있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동생집에 얹혀살면서 서서히 자신의 얘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다. 스토리보다는 한 여인의 가슴 시린 사연을 내면 깊은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연기가 일품이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린다'는 상 파울의 말처럼 두 편 모두 '빨리 감기'로는 도저히 맛을 느낄 수 없는 영화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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