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부패를 교육해 왔던가

누구나 어릴 때 깊이 박힌 인상은 좀체 바꾸려하지 않는다. 내게는 교사에 대한 믿음이 그 중 하나이다.

어릴 때 나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의 교원수첩을 우연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까만 비닐 표지로 된 두툼한 수첩의 맨 앞 페이지에 '무명의 교사'라는 헨리 반 다크의 시가 인쇄돼 있었다. 그 시구는 내게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지금까지도 대부분 기억할 정도다.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교사로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이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도 않는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유일한 보상이도다.'

당시 어렸던 탓에, 나는 저 시의 '무명 교사'가 부친을 지칭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빈궁한 집안을 이끌던 부친이 무척 존경스러워 보였다. 나만 아니라 형들도 같은 생각이었던 거 같다. 후에 부친은 드물게 촌지 봉투를 받아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다. 숨겨놓은 촌지 봉투를 기어코 찾아내 나와 형들과 어머니까지 나서서 부친에게 고함을 지르고 경멸했다. 부친은 "너희들 차비도 줘야 하고 생활비도 보태야 하고…"하며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 교사는 얼마나 박봉에 시달렸던가. 훗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예순 살이 넘은 부친은 새벽에 일어나 교재를 펼쳐놓고 반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기도하던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교사구나, 그제야 그렇게 감동하곤 했다.

교육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엇비슷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동안 연일 터져나왔던 서울시 전 교육감과 교육청의 비리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넘어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뒷돈과 전횡적인 인사이동 등 무수한 부패의 조목들은, 교육 현장도 사회의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 것이다. 청소년 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절실한 희망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에게는 더욱 뼈아팠다. 무너진 공교육을 살려내겠다고 외치지만 그것은 정의롭고 희생적인 정신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옳지 않음에 저항해온 많은 무명 교사들이 있으리라 싶지만 위로부터 흘러내린 악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일정 부분 나약한 존재다. 덕은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다고 하듯이(德不孤 必有隣), 부패도 마찬가지다. 부패도 어울려서 번창하느니만큼 교육청과 학교장의 비리는 그만한 부패의 저변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언제부턴지 우리에게 이런 말이 귀에 익숙하다. 요즘 아이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아파트에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가치전도(價値顚倒)가 된 이런 괴상한 현상도 위로부터 흘러내려 온 분위기의 일단락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면 지식 폭력배를 키우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서울시 전 교육감이 수감될 즈음에 공교롭게도 해군 천안함이 북한의 인접지역에서 침몰하였다. 갑작스런 사태는 우리의 눈과 귀를 모조리 서해상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1천200t의 육중한 초계함이 두 동강 난 초유의 사태가 다급한 정황과 의문점들을 시시각각 안방으로 나르는 와중에, 모처럼 일어난 교육계를 해부하려는 노력까지 덩달아 마비되는 것 같다.

서울시 교육청의 역할 상실과 부패의 정도는 온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비단 서울시 교육청만 그러리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지역의 교육청은 어떠한가. 직책이나 사업을 두고 모종의 거래는 없었는가. 있다면 그러한 것이 평교사들의 교육철학을 훼손하지 않았는가. 또한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청소년들의 미래관은 어떠한가. 다른 곳에서 여하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정당한 교육 행정과 교육의 지표 등 근본적인 질문은 꾸준히 제기되어야 마땅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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