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키 걸'(Dickies girl)은 월마트와 같은 미국 전역의 대형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중저가 의류브랜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바지는 모두 국내 기업에서 만든다. 류왕수(53) 대표가 이끄는 세영INC다. 연간 판매량은 500만장에 이른다.
류 대표는 평생 섬유산업에만 매달렸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5년제인 영남대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섬유과, 단국대 섬유공학과에서 이론을 익혔고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엔 당시 면직업계 최대기업인 방림방적에 입사, 실무를 배웠다. 철없던 까까머리 소년 때부터 '섬유' 하나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다. "제가 좀 고지식한 면이 있습니다. 할 줄 아는 것 하나만 잘하자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제 회사를 차린 뒤에도 바지만 15년째 만들고 있습니다. 하하하."
1995년 1월 처음 회사 문을 열었을 때 직원은 달랑 2명. 창업자금이라고는 퇴직금 2천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15년 만에 회사는 급성장, 지난해 수출 2천만달러 내수 5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2천500만달러 수출 내수 70억원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원 수도 베트남 하노이 직영공장을 포함해 500명이 넘는다.
"처음 서울 올 때는 정말 '빤쓰' 하나만 입고 올라왔습니다. 사업에 뛰어든 것도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강한 욕망 때문이었고요. 학교 공납금도 제때 못 내는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서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죠."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어디 욕심이나 오기만으로 될까. 그에게도 치열한 도전 정신과 남모를 고생이 숨어있겠지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첫번째 기회는 외환위기 때였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회사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을 때 그는 해외영업맨 출신의 폭넓은 인맥과 경험을 살려 원단 구매처 다변화 등으로 생산 원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중저가 의류는 결국 원가 싸움입니다. 해외에서 싸게 원단을 구입해 인건비가 낮은 국가에서 대량 가공 생산해야 합니다. 섬유를 전공한데다 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게 큰 도움이 됐지요."
두번째 기회는 2001년 미국에서 터진 9·11테러였다. 당시 미국은 중남미 출신 불법체류자의 저임금을 활용한 봉제산업이 LA 주변에 발달했는데 테러 경계가 강화되면서 불법 체류자가 줄어 결국 외주 생산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브랜드파워가 있는 대형 회사가 자체 생산을 포기하고 납품을 받는다 하니 저희 같은 회사 수십곳이 덤벼들었죠. 저는 '당신이 주문하면 50일 만에 창고까지 배달해주겠다'고만 했지요. 남들은 6개월을 제시할 때였죠."
그의 말처럼 성공 노하우는 '원 바이 원'(One by one)과 '저스트 온 타임'(Just on time) 전략이었다. 아이템별로 단 한 곳의 바이어만 거래하는 대신 무한신뢰를 쌓고, 제품은 신속하게 반응생산한다는 것이다. "의류사업은 생선장사와 같습니다.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테스트 생산·판매에 나타난 시장의 호응도를 빨리 판단해 대량 생산에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가격 경쟁력 향상, 대량 생산을 위해 베트남 직영공장 외에도 중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 외주 공장을 운영하는 그의 꿈은 OEM 방식 수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다. 낙타가 바늘 구멍 뚫기만큼 어렵다고 하지만 그는 성공을 자신했다.
"산업은 흐름입니다. 블루오션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다 보면 어느새 레드오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장점인 스피드와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도전한다면 국내 섬유산업은 재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는 일자리로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일자리가 문제이지만 중소기업에는 손이 달려요.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베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장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을 빨리 배울 수 있고, 창업 가능성도 훨씬 높거든요. 1년 동안 사장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대기업에서는 결코 누리기 힘든 혜택입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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