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최정근(51)씨는 며칠 전 수박을 덩굴째 뽑아내고 모종을 다시 했다. 덩굴만 무성할 뿐 정작 수박이 달리지 않은 탓이다. 전체 비닐하우스 19동(1만5천㎡) 중 절반인 8동이나 덩굴을 걷어내고 어린 모종을 다시 심었다. 추운 날씨 속에 2개월여 동안 애지중지하며 키운 수박을 덩굴째 뽑아낸 최씨의 마음은 아팠다.
◆냉해 "올 농사 망쳤어요"
"일조량 부족으로 생육도 부진하고 꽃이 피지 않아 수정을 할 수가 없어요. 작년 이맘때쯤에는 지름 20~30㎝쯤 자란 수박이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 상인들이 밭떼기로 사기 위해 몰려들었는데…."
최씨는 새 수박 모종을 경남 진주에서 구했다. 예년에는 들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었다. 최씨는 "지금 심으면 6월 말이나 7월 초순은 돼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값받기는 힘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이렇게 한번 폐농을 하면 그 후유증이 3, 4년은 가기 때문에 내년 농사가 걱정된다"고 했다.
같은 마을 최용택(44)씨도 모종을 다시 하기로 했지만 모종을 금방 구할 수가 없어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포기하고 싶지만 비싼 비용을 들여 지은 하우스를 그냥 놀릴 수는 없잖아요. 그게 농민의 마음인가 봅니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는데 빈 땅을 보면 못 참고 뭐라도 심어야 하는게…."
고령군에서 수박 모종을 다시 한 면적은 3월 말 기준으로 291동(전체 재배 면적 637동)으로 집계됐다. 수박뿐만 아니라 멜론도 성산면을 중심으로 76동이나 다시 모종을 했다.
성주 참외도 상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일조량 부족으로 정상적인 생육이 되지 않아 참외 크기가 작고, 특히 물 찬 참외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종을 다시 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전체 참외 재배 면적 3천872㏊ 중 다시 모종을 해야 하는 면적은 295㏊로 집계됐다. 벽진면이 220.8㏊로 가장 넓고, 성주읍과 대가면이 그 뒤를 이었다. 벽진면 운정리에서 30년 이상 참외 농사를 지어온 배재림(57)씨 경우 하우스 20동 중 곳곳에 병이 들고 생육이 부진해 지금까지 6천포기 이상 다시 모종을 했다.
"서서히 말라 죽으니 환장할 지경이지요. 생육이 부진하니 정상적인 참외는 거의 없고 물 찬 참외만 나오니 제값도 못 받고…." 배씨는 "30년 이상 농사를 지었지만 햇볕이 이렇게 소중한 줄은 몰랐다"며 "내년 농사도 걱정이지만 올 농자금 갚을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안중완(54)씨도 전체 15동 중 6동이 특히 피해가 심해 3천 포기를 뽑아내고 다시 모종했다고 했다. 그는 "아예 3월부터 모종터를 마련, 모종을 키워 그때그때 다시 모종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
◆꽃매미 탓에 과수농 비상!
"에구 징그러워라. 직접 손으로 알 덩어리를 터뜨려서 죽이지 않으면 이놈들이 살아나서 올 농사를 망치는 주범이 될 거예요."
19일 유별나게 바람이 불어닥치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팔음산 포도 주산지인 상주 화동면 선교리에서 농사를 짓는 조용학(52)·김갑남(51)씨 부부는 꽃매미 방제에 여념이 없었다. 올 들어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꽃매미를 제때 방제하지 않으면 올해 포도농사는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귀농 11년째인 조씨는 "사실 아직도 포도농사에 능숙하지 못하다"며 "지금까지는 꽃매미 피해에 대해 걱정해 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면사무소와 농업기술센터에서 유난히 꽃매미 방제를 강조해서 알 덩어리들을 발견하는 즉시 박멸하고 있다"고 밝혔다.
꽃매미 알들은 과수뿐 아니라 지주대, 건물벽 등에 무차별적으로 퍼져 있다. 발견 즉시 알 덩어리들을 직접 장갑 낀 손으로 터뜨려야 한다. 알 덩어리들을 터뜨릴 때마다 '틱! 틱!' 소리가 요란하다.
포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화동면 전체로 번지고 있다. 화동면에서는 최근 포도에 큰 피해를 끼치는 꽃매미 알이 많이 발견됨에 따라 이달 7일부터 공무원과 농협 등 유관기관 임직원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꽃매미 알집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채홍묵(55) 화동면장은 "팔음산 포도의 사활이 꽃매미 방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며 "꽃매미 피해의 심각성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전 행정력을 모아 꽃매미 방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지역 다른 과수농가들도 꽃매미 방제에 비상이다. 희망근로자들과 지역농가 등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며칠 전 병성동과 도남동 지역의 포도밭 4필지 2만4천㎡에서 꽃매미 확산에 따른 알집제거 작업을 했다.
상주시농업기술센터 박중섭(50) 지도사는 "꽃매미는 천적이 없지만 방제만 철저히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충"이라며 "적기에 방제를 철저히 해 줄 것"을 농업인들에게 당부했다.
◆구제역…시름 깊어진 축산농가
19일 영천 금호읍의 한 양돈농가에는 농장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외부인의 방문을 금지하고 출입구의 소독조에 매일 약품을 교체해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차량 출입을 막아 구제역을 원천 차단하려는 것이다. 돼지 1천500마리를 사육하는 이 농가는 인천 강화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뒤 자동화시설을 이용해 매일 돼지우리 소독에 나서고 있다. 평소 3일에 한차례 하던 방역 횟수를 훨씬 더 늘렸으며 돼지우리마다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도 붙였다. 농장주인 박용활(60)씨는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축산인들 간의 왕래도 스스로 자제하고 있고 양돈협회 회원들의 모임이나 행사도 취소했다"고 말했다.
특히 양돈농가들은 사료 운송차량과 돼지 출하 차량의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다. 영천 고경면에서 돼지 2천800마리를 사육하는 서정구(52)씨는 "사료 운송차량의 경우 분무기로 철저히 소독한 뒤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며 "여러 농가를 돌아다니는 출하 차량의 경우 도축장 출입구에서도 방역을 강화해야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양돈농가들과 한우농가들은 축산물 가격 하락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박용대(59) 양돈협회 영천지부장은 "나들이를 많이 하는 봄부터 6월까지 수요 증가로 통상 돼지 가격이 상승하지만 올해엔 구제역으로 값이 떨어질 수 있어 농가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천 청통면에서 한우 370마리를 사육하는 이기칠(54)씨는 "구제역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축산인들의 농장 견학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며 "출하 중단이 장기화되면 일부 농가들은 자금난을 겪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고령 성주·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상주·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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