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장 소중한 것

박월수
박월수

몇 해 전 태국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을 여행할 때였다. 강변을 따라 쭉 늘어선 초라해 보이는 집들의 테라스에는 화려한 빛깔의 부겐빌레아 꽃들로 가득했다. 이국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저절로 부풀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안내원이 들려준 말은 내게 조금은 실망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저 꽃이 일 년 내내 피어 있어서 더러는 지겨워하기도 합니다." 주변을 밝게 빛내주는 그 꽃의 소중함을 늘 함께 있는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항상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가족이 아닐까 싶다. 지난여름 동기 모임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는 나에게 가족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현장 일을 마치고 서둘러 왔다는 동기 하나가 땀내를 풀풀 풍기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그의 어린 아들에게서 집에 있는 에어컨을 틀어도 되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껄껄 웃으며 승낙을 한 동기는 우리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해명에 들어갔다. 보나마나 그의 아내가 일부러 아이에게 시켰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시간만 축냈다고 생각하는 자기들끼리 편안한 잠을 자기가 미안하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가장이 들어와야만 시원하게 잠들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진짜 속뜻 풀이는 더욱 재미났다. 아이들에게 가장의 수고로움과 예의를 가르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를 핑계 삼아 남편을 꼼짝없이 일찍 귀가하게 하려는 아내의 속셈이 들어있다는 설명이었다. 다 알면서도 기쁘게 속아주는 그 친구를 보며 가족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류를 지켜온 방탄조끼라는 '웃음'의 근원은 아마도 가정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과 함께.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어 잊기 쉽고 소홀하기 쉬운 가족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보다 상처 주는 말, 혹은 무관심으로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햇볕마저 향기를 뿜는 눈부신 오월의 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마음속에 품었던 말들을 풀어놓으며 서로의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면 좋겠다. 그런 작은 몸짓들이 가정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그 행복이 골목을 걸어 나와 사회를 움직이고 온 나라를 환하게 밝히기를 소망한다.

나는 지금 대구수목원 열대 온실이 마주보이는 벤치에 앉아 부겐빌레아 꽃을 바라보고 있다. 항상 같은 모습으로 피어있는 이국의 꽃을 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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